책소개
편집자 일을 해오면서, 가끔 목수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를 먹여주고 입혀주는 나무를 사랑하는 나는, 결국 나무를 베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요. 뿌리내린 그대로 있는 나무에 기대고 싶은 요즘입니다. 보통 한 권의 책에는 한 사람의 작가가 담깁니다. 일관적인 한 사람 몫의 페르소나가. 하지만 나의 친구를 떠올려보면 그렇지 않죠. 친구가 미웠다가 존경스러웠다가, 또 다른 나인가 싶다가도 불가해지죠. 그렇기 때문에 계속 이 친구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잘 요약되지 않고, 그림체도 들쭉날쭉, 같은 사람이 그렸는지, 같은 사람이 쓴 건지 의심스러울 만큼 다양한. 친구 같은 책을 소개해서, 친구를 늘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들에게 부탁했어요. 누락하거나 탈락시키지 말고, 그냥 이제껏 창작해오면서 쌓인 부산물 같은 걸 그저 쌓아달라고요. 베어낸 나무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나무 곁에 돋은 버섯들을 뜯어다가, 독자에게 대접하는, 그런 단편집의 시리즈랄까요. (편집자 선배들의 꾸지람이 들려오는 것 같은데!)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 책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편집되지 않은 책입니다. 그래도 회고전도 아닌 데서 늙지 않은 작가의 온 생 전체를 조망하는 일에 흥미가 돋지 않으시나요? 친구의 졸업앨범을 펼치듯, 완성된 연보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생활을 따끈하게 읽는 경험을 권합니다.
사라진 풍경을 복원하는 단편의 정석
공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들어선 건물, 재개발로 사라진 골목, 버드나무 아래 혼자 풀피리 부는 아이. 편집이 가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편집할 필요가 없어요…. 정말로. 컷의 배분도, 연출 흐름도, 이야기를 매듭짓는 방식도, 많지 않은 대사 하나하나, 손댈 곳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겨우 나와 같은 또래의 이 작가가 가진 능숙함과 노련함에는 늘 혀를 내두릅니다. 이윤희는 우리의 어린 시절만이 아니라, 그 어린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던 언니와 형의 이야기까지 그리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시간을 곁에서 듣고 자란 사람이 그린 단편들은 세대의 전환기 속에서 근원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가본 적 없는 곳과 경험한 적 없는 이야기에서 희미한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아마 그녀의 스타일이라고 하면, 기억을 양식화한 결과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작가
이윤희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책 『안경을 쓴 가을』과 『열세 살의 여름』을 냈다. 10대 20대에는 일기를 많이 썼다. 해마다 노트가 꽤 쌓였는데, 대부분은 겪은 일에 대한 기록과 한탄, 꾼 꿈들에 관한 것이지만 돌이켜보면 언젠가 다 이야기가 될 거라는 바람으로 써내려갔던 것 같다.
이번 단편집에 만화들을 실으면서 오랜만에 그 일기장들을 꺼내 읽는 기분이 들었다. 펼쳐보고 싶지 않으면서도, 막상 들여다보면 아득하고 낯설어 마치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재밌는 그런 기억들.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라는 옛말을 좋아한다. 물론 가난해지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이야기를 좋아하면 다른 것이 크게 필요없을만큼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의미가 마음에 들어서다. 언젠가는 내가 그리는 이야기와 나의 삶이 조화롭기를 바란다.












책소개
편집자 일을 해오면서, 가끔 목수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를 먹여주고 입혀주는 나무를 사랑하는 나는, 결국 나무를 베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요. 뿌리내린 그대로 있는 나무에 기대고 싶은 요즘입니다. 보통 한 권의 책에는 한 사람의 작가가 담깁니다. 일관적인 한 사람 몫의 페르소나가. 하지만 나의 친구를 떠올려보면 그렇지 않죠. 친구가 미웠다가 존경스러웠다가, 또 다른 나인가 싶다가도 불가해지죠. 그렇기 때문에 계속 이 친구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잘 요약되지 않고, 그림체도 들쭉날쭉, 같은 사람이 그렸는지, 같은 사람이 쓴 건지 의심스러울 만큼 다양한. 친구 같은 책을 소개해서, 친구를 늘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들에게 부탁했어요. 누락하거나 탈락시키지 말고, 그냥 이제껏 창작해오면서 쌓인 부산물 같은 걸 그저 쌓아달라고요. 베어낸 나무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나무 곁에 돋은 버섯들을 뜯어다가, 독자에게 대접하는, 그런 단편집의 시리즈랄까요. (편집자 선배들의 꾸지람이 들려오는 것 같은데!)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 책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편집되지 않은 책입니다. 그래도 회고전도 아닌 데서 늙지 않은 작가의 온 생 전체를 조망하는 일에 흥미가 돋지 않으시나요? 친구의 졸업앨범을 펼치듯, 완성된 연보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생활을 따끈하게 읽는 경험을 권합니다.
사라진 풍경을 복원하는 단편의 정석
공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들어선 건물, 재개발로 사라진 골목, 버드나무 아래 혼자 풀피리 부는 아이. 편집이 가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편집할 필요가 없어요…. 정말로. 컷의 배분도, 연출 흐름도, 이야기를 매듭짓는 방식도, 많지 않은 대사 하나하나, 손댈 곳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겨우 나와 같은 또래의 이 작가가 가진 능숙함과 노련함에는 늘 혀를 내두릅니다. 이윤희는 우리의 어린 시절만이 아니라, 그 어린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던 언니와 형의 이야기까지 그리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시간을 곁에서 듣고 자란 사람이 그린 단편들은 세대의 전환기 속에서 근원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가본 적 없는 곳과 경험한 적 없는 이야기에서 희미한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아마 그녀의 스타일이라고 하면, 기억을 양식화한 결과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작가
이윤희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책 『안경을 쓴 가을』과 『열세 살의 여름』을 냈다. 10대 20대에는 일기를 많이 썼다. 해마다 노트가 꽤 쌓였는데, 대부분은 겪은 일에 대한 기록과 한탄, 꾼 꿈들에 관한 것이지만 돌이켜보면 언젠가 다 이야기가 될 거라는 바람으로 써내려갔던 것 같다.
이번 단편집에 만화들을 실으면서 오랜만에 그 일기장들을 꺼내 읽는 기분이 들었다. 펼쳐보고 싶지 않으면서도, 막상 들여다보면 아득하고 낯설어 마치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재밌는 그런 기억들.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라는 옛말을 좋아한다. 물론 가난해지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이야기를 좋아하면 다른 것이 크게 필요없을만큼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의미가 마음에 들어서다. 언젠가는 내가 그리는 이야기와 나의 삶이 조화롭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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