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뿅! 간 건 아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달리 보이기 시작한,
그대 이름 바로 ‘평양냉면'.
평양냉면을 먹을 때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할 거라는 확고한 생각을 가진,
먹을 건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맛있는 건 평양냉면이라는 먹세이스트 원재희의 평양냉면을 향한 세레나데.
두 손에 딱 맞게 들리는 그릇 속 뽀얀 냉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젓가락으로 면을 풀어 면에는 육수의 촉촉함을 적시고, 육수에는 면에 붙은 메밀의 향을 더해본다. 이미 맛있지만 더욱 맛있어지길 기대하며 정성껏 면을 푼다. 무거울 정도로 한 움큼 올려 입속에 한가득 넣어 오물오물 씹는다. 촉촉한 면에서 메밀의 향이 퍼진다. 들숨과 날숨 사이로 면에서 퍼지는 메밀의 어렴풋한 향에 또다시 웃음이 번진다. 웃음 사이로 메밀 향이 달아날까 벌린 입을 꼭 다물고 다시 오물오물 씹는다. 마지막 한입을 먹고 빈 그릇을 마주할 때는 메밀 향보다 짙은 아쉬움만이 남는다. 냉면을 먹는 시간은 10분뿐이지만 10분의 여운은 아주 오래간다. Just One 10 MINUTES~ 나의 냉면이 되는 순간~ 내일은 또 어떤 냉면이 나를 유혹할까.
미식가도 평론가도 아닌 오직 좋아하는 마음 하나뿐인 호(好)식가가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는 여정, 먹는 순간, 먹고 난 후의 시간을 담은 에세이.
평양냉면을 먹으며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 늘 혼자라 여겼던 시간에 언제나 함께했던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평양냉면 한 그릇에 담긴 저자의 기억과 추억을 통해 잊고 지냈던 순간들을 떠올리길,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길, 무엇보다 <평양냉면>을 통해 웃음 짓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목차
8 사랑의 서막 (시작하며)
20 ‘평양냉면’이 알고 싶다
34 나의 냉면이 되는 순간
46 픽미업! 평양냉면! (필동면옥)
60 추억과 그리움의 집합소 (평래옥)
74 리듬 앤 블루스 (을밀대)
88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에 관하여 (강서면옥)
98 계절은 변해도 우리는 변치않지 (서북면옥)
110 시간 여행자 (을지면옥)
124 냉면과 함께라면 (부원면옥)
140 설레는 이 내 마음을 (광화문 국밥)
150 점과 점이 만나 냉면을 이루다 (진미 평양냉면)
162 성지순례 (의정부 평양면옥)
174 기쁨을 싣고 (마치며)
책속의 문장
나에게 평양냉면은 6·25 때 북에서 남으로 피난 오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즐겨 드시던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예배가 끝나면 자주 냉면집을 찾았다. 평양냉면을 비롯해 오장동의 함흥냉면까지. 그덕에 냉면 자체는 낯선 음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먹을 때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음식임에는 틀림없었다. 함흥냉면은 면이 잘 씹히지 않아 그 모습 그대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대체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다. 면의 탄력이 너무 좋아 내 치아와 치아가 만나지 못하고 도로 튕겨 나가는 거 같았다. 씹히고는 있는지 이게 고무줄인지 면인지 모르겠어서 매번 가위로 아작을 낸 후 숟가락으로 퍼먹었다(아직도 함흥냉면이나 분식냉면은 가위로 크게 삼등분으로 자르고, 다시 휙휙 저어 세 번을 더 잘라먹는다). 평양냉면은 또 어떻고. 육수인지 생수인지 모를 멀건 국물에 두꺼운 면이 턱 하니 올라와 있는 것이 성의도 없어 보였다. 곱게 말려있는 함흥냉면은 성의라도 있어 보였지, 성의 없는 평양냉면은 맛조차 납득이 가지 않았다. 잘게 잘라서라도 먹긴했던 함흥냉면과 달리, 평양냉면은 이게 도통 무슨 맛인지 싶었다. 솔직히 씹으면 씹을수록 씹고 싶지 않았다.〈사랑의 서막 中〉
마실 때의 전략은 절대 혀의 앞쪽 부분으로 맛을 느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육수가 자연스럽게 식도 로 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혀의 역할이다. 맛은 식도와 식도에 가까운 안쪽 혀가 본다. 그러니까 ‘꿀 꺽’에서 꺼를 지나 ‘ㄱ’ 부근에서 맛을 느낀다. 그 부 분이 육수가 식도로 넘어가는 순간인데 이때! 두 눈을 감는다. ‘맙소사! 환상!’ 아직 면을 먹지도 않았지 만 이미 게임 끝이다. 육수와 나, 나와 육수만이 이 우 주에 있는 듯 내 모든 감각으로 육수의 감칠맛을 찾 고 느낀다.〈나의 냉면이 되는 순간 中〉
평양냉면 한 그릇이 나에게 주는 행복이 이렇다.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는 순간부터 먹고 나서 그리고 그 이후까지 행복감이 이어진다. 가끔은 이런 1차원 적인 행복이 나의 내일을 이어 준다는 생각에 고맙기 도 하다. 삶의 어떤 한 부분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 닫게 해 준 자체도 좋지만,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음도 행복하게 한다. 면발을 따라 이어 지는 행복이 나의 내일까지 연결해준다. 집으로 향하 는 길엔 오는 길 흘렸던 땀방울만큼 콧노래가 나온다. 씩씩한 발걸음으로 공덕역을 향해간다. 콧노래 사이 로 평양냉면의 여운이 느껴진다. 곧 지금의 행복감이 냉면처럼 소화되겠지만 다시 냉면을 마주하면 행복 은 되살아나기 때문에 끄떡없다. 기다란 젓가락을 휘 두르면 나를 덮친 어두움이 사라진다. 행복함을 느끼고 그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게 어떤 것이든지. 그것이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어도 나 자신은 구원할 테니 말이다.〈리듬 앤 블루스 中〉
일을 그만두고 힘들었던 부분 중의 하나는 마음 껏 냉면을 먹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웬만하면 끼니 를 집에서 해결하고 되도록 외출을 삼가는 삶을 살았 는데 그럴수록 냉면의 맛이 고팠다. 냉면의 맛이 단 전에서부터 올라와 혀끝에 도달할 때면 마음속에 바 를 정(正)을 곧게 그려가며 두 글자가 완성될 때까지 참아냈다. 한 획 한 획 바르게 그어 10번이 되면 누워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냉면집으로 향했다. 급할땐 집 앞에 있는 〈서북면옥〉을 찾았고, 큰맘을 먹은 날에는 〈부원면옥〉까지도 갔다. 예전과 달리 입구부터 풍기 는 고소한 돼지기름 냄새를 모른 체하며 매장에 들어 갔다. 냉면을 한 그릇 시키고 통장 잔액을 들여다보 고는 빈대떡을 시킬까 말까를 고민하다 이내 포기하 기도 했다. 냉면을 먹으러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이 미 오늘의 사치였다는 것을 잔액이 말해줬다. 24시간 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간 부자는, 숨 쉬는 것을 제 외하면 생각보다 누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냉면 그릇 위에서 깨달아 버렸다. 만원이 안되는 냉면을 10 번이나 참아내고 먹는 걸 자제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이 스스로를 위한 위안이었음을 느껴 약간 슬펐다. 또 약간 비참하기도 했다. 그래도 냉면은 얼 굴맡에 놓였고 먹었다. 슬픈 나의 마음도 모르고 냉면 은 여전히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냉면을 또 10번을 참아야 한다니 매일 먹어도 통장 잔액 한 번을 들여다 보지 않던 그때가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처음부터 뿅! 간 건 아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달리 보이기 시작한,
그대 이름 바로 ‘평양냉면'.
평양냉면을 먹을 때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할 거라는 확고한 생각을 가진,
먹을 건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맛있는 건 평양냉면이라는 먹세이스트 원재희의 평양냉면을 향한 세레나데.
두 손에 딱 맞게 들리는 그릇 속 뽀얀 냉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젓가락으로 면을 풀어 면에는 육수의 촉촉함을 적시고, 육수에는 면에 붙은 메밀의 향을 더해본다. 이미 맛있지만 더욱 맛있어지길 기대하며 정성껏 면을 푼다. 무거울 정도로 한 움큼 올려 입속에 한가득 넣어 오물오물 씹는다. 촉촉한 면에서 메밀의 향이 퍼진다. 들숨과 날숨 사이로 면에서 퍼지는 메밀의 어렴풋한 향에 또다시 웃음이 번진다. 웃음 사이로 메밀 향이 달아날까 벌린 입을 꼭 다물고 다시 오물오물 씹는다. 마지막 한입을 먹고 빈 그릇을 마주할 때는 메밀 향보다 짙은 아쉬움만이 남는다. 냉면을 먹는 시간은 10분뿐이지만 10분의 여운은 아주 오래간다. Just One 10 MINUTES~ 나의 냉면이 되는 순간~ 내일은 또 어떤 냉면이 나를 유혹할까.
미식가도 평론가도 아닌 오직 좋아하는 마음 하나뿐인 호(好)식가가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는 여정, 먹는 순간, 먹고 난 후의 시간을 담은 에세이.
평양냉면을 먹으며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 늘 혼자라 여겼던 시간에 언제나 함께했던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평양냉면 한 그릇에 담긴 저자의 기억과 추억을 통해 잊고 지냈던 순간들을 떠올리길,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길, 무엇보다 <평양냉면>을 통해 웃음 짓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목차
8 사랑의 서막 (시작하며)
20 ‘평양냉면’이 알고 싶다
34 나의 냉면이 되는 순간
46 픽미업! 평양냉면! (필동면옥)
60 추억과 그리움의 집합소 (평래옥)
74 리듬 앤 블루스 (을밀대)
88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에 관하여 (강서면옥)
98 계절은 변해도 우리는 변치않지 (서북면옥)
110 시간 여행자 (을지면옥)
124 냉면과 함께라면 (부원면옥)
140 설레는 이 내 마음을 (광화문 국밥)
150 점과 점이 만나 냉면을 이루다 (진미 평양냉면)
162 성지순례 (의정부 평양면옥)
174 기쁨을 싣고 (마치며)
책속의 문장
나에게 평양냉면은 6·25 때 북에서 남으로 피난 오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즐겨 드시던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예배가 끝나면 자주 냉면집을 찾았다. 평양냉면을 비롯해 오장동의 함흥냉면까지. 그덕에 냉면 자체는 낯선 음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먹을 때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음식임에는 틀림없었다. 함흥냉면은 면이 잘 씹히지 않아 그 모습 그대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대체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다. 면의 탄력이 너무 좋아 내 치아와 치아가 만나지 못하고 도로 튕겨 나가는 거 같았다. 씹히고는 있는지 이게 고무줄인지 면인지 모르겠어서 매번 가위로 아작을 낸 후 숟가락으로 퍼먹었다(아직도 함흥냉면이나 분식냉면은 가위로 크게 삼등분으로 자르고, 다시 휙휙 저어 세 번을 더 잘라먹는다). 평양냉면은 또 어떻고. 육수인지 생수인지 모를 멀건 국물에 두꺼운 면이 턱 하니 올라와 있는 것이 성의도 없어 보였다. 곱게 말려있는 함흥냉면은 성의라도 있어 보였지, 성의 없는 평양냉면은 맛조차 납득이 가지 않았다. 잘게 잘라서라도 먹긴했던 함흥냉면과 달리, 평양냉면은 이게 도통 무슨 맛인지 싶었다. 솔직히 씹으면 씹을수록 씹고 싶지 않았다.〈사랑의 서막 中〉
마실 때의 전략은 절대 혀의 앞쪽 부분으로 맛을 느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육수가 자연스럽게 식도 로 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혀의 역할이다. 맛은 식도와 식도에 가까운 안쪽 혀가 본다. 그러니까 ‘꿀 꺽’에서 꺼를 지나 ‘ㄱ’ 부근에서 맛을 느낀다. 그 부 분이 육수가 식도로 넘어가는 순간인데 이때! 두 눈을 감는다. ‘맙소사! 환상!’ 아직 면을 먹지도 않았지 만 이미 게임 끝이다. 육수와 나, 나와 육수만이 이 우 주에 있는 듯 내 모든 감각으로 육수의 감칠맛을 찾 고 느낀다.〈나의 냉면이 되는 순간 中〉
평양냉면 한 그릇이 나에게 주는 행복이 이렇다.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는 순간부터 먹고 나서 그리고 그 이후까지 행복감이 이어진다. 가끔은 이런 1차원 적인 행복이 나의 내일을 이어 준다는 생각에 고맙기 도 하다. 삶의 어떤 한 부분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 닫게 해 준 자체도 좋지만,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음도 행복하게 한다. 면발을 따라 이어 지는 행복이 나의 내일까지 연결해준다. 집으로 향하 는 길엔 오는 길 흘렸던 땀방울만큼 콧노래가 나온다. 씩씩한 발걸음으로 공덕역을 향해간다. 콧노래 사이 로 평양냉면의 여운이 느껴진다. 곧 지금의 행복감이 냉면처럼 소화되겠지만 다시 냉면을 마주하면 행복 은 되살아나기 때문에 끄떡없다. 기다란 젓가락을 휘 두르면 나를 덮친 어두움이 사라진다. 행복함을 느끼고 그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게 어떤 것이든지. 그것이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어도 나 자신은 구원할 테니 말이다.〈리듬 앤 블루스 中〉
일을 그만두고 힘들었던 부분 중의 하나는 마음 껏 냉면을 먹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웬만하면 끼니 를 집에서 해결하고 되도록 외출을 삼가는 삶을 살았 는데 그럴수록 냉면의 맛이 고팠다. 냉면의 맛이 단 전에서부터 올라와 혀끝에 도달할 때면 마음속에 바 를 정(正)을 곧게 그려가며 두 글자가 완성될 때까지 참아냈다. 한 획 한 획 바르게 그어 10번이 되면 누워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냉면집으로 향했다. 급할땐 집 앞에 있는 〈서북면옥〉을 찾았고, 큰맘을 먹은 날에는 〈부원면옥〉까지도 갔다. 예전과 달리 입구부터 풍기 는 고소한 돼지기름 냄새를 모른 체하며 매장에 들어 갔다. 냉면을 한 그릇 시키고 통장 잔액을 들여다보 고는 빈대떡을 시킬까 말까를 고민하다 이내 포기하 기도 했다. 냉면을 먹으러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이 미 오늘의 사치였다는 것을 잔액이 말해줬다. 24시간 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간 부자는, 숨 쉬는 것을 제 외하면 생각보다 누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냉면 그릇 위에서 깨달아 버렸다. 만원이 안되는 냉면을 10 번이나 참아내고 먹는 걸 자제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이 스스로를 위한 위안이었음을 느껴 약간 슬펐다. 또 약간 비참하기도 했다. 그래도 냉면은 얼 굴맡에 놓였고 먹었다. 슬픈 나의 마음도 모르고 냉면 은 여전히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냉면을 또 10번을 참아야 한다니 매일 먹어도 통장 잔액 한 번을 들여다 보지 않던 그때가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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