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ed Matter
冊(책)은 인쇄되어 묶인 물질입니다. 이 책은 인쇄물(printed matter)이면서 디자인물(designed matter)이고, 구체적으로는 열 사람 생각의 묶음입니다. 이 책의 모든 글은 디자이너가 쓴 것입니다. 아니, 글을 쓴 것이 먼저고 자신이 쓴 글을 스스로 디자인했으니 이렇게 고쳐야겠습니다. 이 책의 디자인은 저자가 직접 한 것이라고요. 그러나 이 문장도 만족스럽진 않습니다. ‘디자이너’라는 나도 남도 알아볼 수 있는 인덱스가 하루아침에 주어진 것은 아닐 테죠. 글을 쓰거나 산책을 하거나 양치질을 하거나 여하튼 디자인을 하지 않을 때도 그들은 디자이너잖아요. 보통은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야기의 말미에 등장하는 우리의 영웅들이, 이 책에서는 맨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이 책에서 어떤 문제, 대화, 이야기의 장본인이 된 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운을 떼고 마무리 짓는 데 낱말 matter의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물질이자 문제이면서,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뜻을 실어나르는 친구입니다. ‘문제없다’의 경쾌함을 발산하는 디자이너와 ‘문제없다’의 비현실성에 의구심을 감추지 않는 디자이너가 한자리에 묶일 수 있게 된 것은, 어떤 물질이든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며, 한 인간이 문제 삼는 항목이 공동체에 역시 긴급한 사안일 수 있음을 환기해주는 matter 덕분입니다. 글쓴이의 소개에 그가 쓴 글에서 추출한 몇 개의 낱말을 인덱스로 더했습니다. 낱말에서 만들기 시작한 책인 만큼, 낱말로 시작하는 독서도 좋겠다 싶었거든요. 의미라는 불순물과 함께 반짝이는 항목(matter)의 안내를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당근은 모두 같은 당근이 아닙니다. 글쓴이는 주황색 채소를 의미하기 위해 당근이란 낱말을 이용했지만, 이 글을 책으로 만들어야 하는 디자이너는 당근이라는 글자의 생김을 고르고 조절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당근의 분위기를 새삼스럽게 설계합니다. (당근 ≠ 당근 -- 이기준)
일반적인 의미에서 디자인은 디자인하는 대상에 대한 긍정을 전제한 활동이기 때문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기 쉽지 않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의 일이라면 의뢰받은 단계에서 거절하는 것이 디자이너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반대의사일 테지요. 다만 단정하기까지는 가능성의 대지를 좁히고 싶지 않습니다. 과연 북 디자이너의 정치적 견해와 의사표현은 어떤 가능성으로 그려질 수 있을까요. (북 디자인과 정치 -- 김동신)
번역은 원문에 기댄다는 말을 들은 디자이너는 고민합니다. 원문이 나쁘면 번역도 나빠질 수밖에 없을까. 나쁜 원문을 좋은 번역으로 보여주는 것은 선행일까. 전시가 열리기에 전시 아이덴티티라는 작업을 할 수 있어지고, 출판이 되기에 북 디자인이라는 작업을 할 수 있어진 상황 앞에서 디자이너는 악어새라는 비유에 갇히게 될까요. (16페이지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오혜진)
한글은 소리를 보여준다, 디자이너가 하루는 그런 생각에 강렬하게 사로잡혔습니다. 눈에 보일 리 없는 소리라는 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작업 앞에서 세종이 품었을 사고의 과정을 추적해봅니다. 단순히 좋은 사람(성군)이라고 이해하고 지나치기에는 미진한 기분이 듭니다. 시각 은유를 추상적으로 파악하고 형태관계를 논리화한 과정을 쪼개며, 세종의 과업을 디자인 결과물로 이해해보려 합니다. (거리에서 --이지원)
이렇게 멋있는 디자인을 몰라보다니! 하며 답답해하던 것도 어제, 영리해진 디자이너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시안을 보여주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호감도를 높인다면?' '프레젠테이션 시작 전에 개요를 한번 더 짚는다면?' 영원한 숙제인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에 MBTI 분류와 같은 명백한 위트를 담았습니다. (‘소통’에 이르기 위해 클라이언트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 --박럭키)
고립되는 것도 회사에서 소진되는 것도 사이드잡에 파묻히는 것도 코로나19도 괴로웠습니다. 디자이너는 떠올렸습니다. 사상 최대치의 저리 코로나대출을 이용해 업의 터전을 마련해보자고. 부동산을 디자인하는 과정에 디자이너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지만, 나를 포함한 동료를 초대하고 환대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보람은 상당해 보입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 공유오피스 만들기 --금종각)
시끌벅적한 도시디자인의 광풍에 질려 지역을 떠나 서울에 자리 잡았던 젊은 디자이너가 '귀향'했습니다. 삶의 구체성을 배반하는 잘 정돈된 디자인이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디자인을 우리는 좇아도 되는 것일까요. 새 프라이탁을 구매하는 일은 환경친화적인 행동일까요. 디자인이라는 세 글자를 둘러싼 사념들을 가감 없이 적어내려갔습니다.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결론을 내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우선합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디자인 --정동규)
대구에 '내려'온 지 13년. 서울사람들은 대구에 내려간다고 하고, 대구사람들은 서울에 내려간다고 합니다. 대구사람들은 사투리로 '말'하지만 '글'쓰지는 않습니다. 지방의 대학은 학생들의 상경을 '인재공급'이 아니라 '인재유출'이라 부릅니다. 디자인이 삶을 외면하는 괴물의 모습을 하고 나타날 때, 디자인이 삼킨 삶을 구하는 것도 디자이너 자신일까요? (대구에 ‘내려’와서 본 그래픽디자인 --정재완)
디자인한 '것'은 '겉'으로 드러납니다. 이렇게 드러나는 것들을 드러내기까지 디자이너는, 디자인은, 수많은 것(겉)들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요. 의도와 표시, 의미와 공감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디자인되는 것 --김의래)
디자인한 '것'은 '겉'으로 드러납니다. 이렇게 드러나는 것들을 드러내기까지 디자이너는, 디자인은, 수역사가 가지고 싶은 디자이너. 발 붙일 땅이 없다는 감각을 극복하기 위한 공부가 시작됩니다. 역사가 없는 디자인을 어떻게 디자인 역사에 포함시킬지 따져 묻는 사람들 앞에서 역사와 언어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고민하고 상상하는 사람들과 함께 섰습니다. (가령, 탈코 운동은 디자인이 될 수 있을까? --신인아)
Designed Matter
冊(책)은 인쇄되어 묶인 물질입니다. 이 책은 인쇄물(printed matter)이면서 디자인물(designed matter)이고, 구체적으로는 열 사람 생각의 묶음입니다. 이 책의 모든 글은 디자이너가 쓴 것입니다. 아니, 글을 쓴 것이 먼저고 자신이 쓴 글을 스스로 디자인했으니 이렇게 고쳐야겠습니다. 이 책의 디자인은 저자가 직접 한 것이라고요. 그러나 이 문장도 만족스럽진 않습니다. ‘디자이너’라는 나도 남도 알아볼 수 있는 인덱스가 하루아침에 주어진 것은 아닐 테죠. 글을 쓰거나 산책을 하거나 양치질을 하거나 여하튼 디자인을 하지 않을 때도 그들은 디자이너잖아요. 보통은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야기의 말미에 등장하는 우리의 영웅들이, 이 책에서는 맨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이 책에서 어떤 문제, 대화, 이야기의 장본인이 된 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운을 떼고 마무리 짓는 데 낱말 matter의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물질이자 문제이면서,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뜻을 실어나르는 친구입니다. ‘문제없다’의 경쾌함을 발산하는 디자이너와 ‘문제없다’의 비현실성에 의구심을 감추지 않는 디자이너가 한자리에 묶일 수 있게 된 것은, 어떤 물질이든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며, 한 인간이 문제 삼는 항목이 공동체에 역시 긴급한 사안일 수 있음을 환기해주는 matter 덕분입니다. 글쓴이의 소개에 그가 쓴 글에서 추출한 몇 개의 낱말을 인덱스로 더했습니다. 낱말에서 만들기 시작한 책인 만큼, 낱말로 시작하는 독서도 좋겠다 싶었거든요. 의미라는 불순물과 함께 반짝이는 항목(matter)의 안내를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당근은 모두 같은 당근이 아닙니다. 글쓴이는 주황색 채소를 의미하기 위해 당근이란 낱말을 이용했지만, 이 글을 책으로 만들어야 하는 디자이너는 당근이라는 글자의 생김을 고르고 조절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당근의 분위기를 새삼스럽게 설계합니다. (당근 ≠ 당근 -- 이기준)
일반적인 의미에서 디자인은 디자인하는 대상에 대한 긍정을 전제한 활동이기 때문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기 쉽지 않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의 일이라면 의뢰받은 단계에서 거절하는 것이 디자이너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반대의사일 테지요. 다만 단정하기까지는 가능성의 대지를 좁히고 싶지 않습니다. 과연 북 디자이너의 정치적 견해와 의사표현은 어떤 가능성으로 그려질 수 있을까요. (북 디자인과 정치 -- 김동신)
번역은 원문에 기댄다는 말을 들은 디자이너는 고민합니다. 원문이 나쁘면 번역도 나빠질 수밖에 없을까. 나쁜 원문을 좋은 번역으로 보여주는 것은 선행일까. 전시가 열리기에 전시 아이덴티티라는 작업을 할 수 있어지고, 출판이 되기에 북 디자인이라는 작업을 할 수 있어진 상황 앞에서 디자이너는 악어새라는 비유에 갇히게 될까요. (16페이지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오혜진)
한글은 소리를 보여준다, 디자이너가 하루는 그런 생각에 강렬하게 사로잡혔습니다. 눈에 보일 리 없는 소리라는 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작업 앞에서 세종이 품었을 사고의 과정을 추적해봅니다. 단순히 좋은 사람(성군)이라고 이해하고 지나치기에는 미진한 기분이 듭니다. 시각 은유를 추상적으로 파악하고 형태관계를 논리화한 과정을 쪼개며, 세종의 과업을 디자인 결과물로 이해해보려 합니다. (거리에서 --이지원)
이렇게 멋있는 디자인을 몰라보다니! 하며 답답해하던 것도 어제, 영리해진 디자이너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시안을 보여주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호감도를 높인다면?' '프레젠테이션 시작 전에 개요를 한번 더 짚는다면?' 영원한 숙제인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에 MBTI 분류와 같은 명백한 위트를 담았습니다. (‘소통’에 이르기 위해 클라이언트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 --박럭키)
고립되는 것도 회사에서 소진되는 것도 사이드잡에 파묻히는 것도 코로나19도 괴로웠습니다. 디자이너는 떠올렸습니다. 사상 최대치의 저리 코로나대출을 이용해 업의 터전을 마련해보자고. 부동산을 디자인하는 과정에 디자이너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지만, 나를 포함한 동료를 초대하고 환대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보람은 상당해 보입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 공유오피스 만들기 --금종각)
시끌벅적한 도시디자인의 광풍에 질려 지역을 떠나 서울에 자리 잡았던 젊은 디자이너가 '귀향'했습니다. 삶의 구체성을 배반하는 잘 정돈된 디자인이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디자인을 우리는 좇아도 되는 것일까요. 새 프라이탁을 구매하는 일은 환경친화적인 행동일까요. 디자인이라는 세 글자를 둘러싼 사념들을 가감 없이 적어내려갔습니다.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결론을 내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우선합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디자인 --정동규)
대구에 '내려'온 지 13년. 서울사람들은 대구에 내려간다고 하고, 대구사람들은 서울에 내려간다고 합니다. 대구사람들은 사투리로 '말'하지만 '글'쓰지는 않습니다. 지방의 대학은 학생들의 상경을 '인재공급'이 아니라 '인재유출'이라 부릅니다. 디자인이 삶을 외면하는 괴물의 모습을 하고 나타날 때, 디자인이 삼킨 삶을 구하는 것도 디자이너 자신일까요? (대구에 ‘내려’와서 본 그래픽디자인 --정재완)
디자인한 '것'은 '겉'으로 드러납니다. 이렇게 드러나는 것들을 드러내기까지 디자이너는, 디자인은, 수많은 것(겉)들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요. 의도와 표시, 의미와 공감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디자인되는 것 --김의래)
디자인한 '것'은 '겉'으로 드러납니다. 이렇게 드러나는 것들을 드러내기까지 디자이너는, 디자인은, 수역사가 가지고 싶은 디자이너. 발 붙일 땅이 없다는 감각을 극복하기 위한 공부가 시작됩니다. 역사가 없는 디자인을 어떻게 디자인 역사에 포함시킬지 따져 묻는 사람들 앞에서 역사와 언어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고민하고 상상하는 사람들과 함께 섰습니다. (가령, 탈코 운동은 디자인이 될 수 있을까? --신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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