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법칙에 순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치유의 목소리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작가였던 헤르만 헤세가 살아가며 사랑하며 사색했던, 그중에서도 힘들고 고통스럽고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을 치유의 언어로 정갈하게 길어올린 산문과 시편들을 모았다. 헤세는 스스로 말했듯이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던”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조차 순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고통을 겪고, 그로 인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행위들이 그에게는 왜 그토록 고통스럽고 힘겨웠을까? 그는 고뇌의 근원을 찾아 동양과 서양, 신과 자연, 현실과 이상, 삶과 죽음을 근원적이고도 조화롭게 탐색한다. 그리하여 정신의 족쇄를 풀어주는 치유의 언어, 깊은 통찰력으로 얻은 순도 높은 영혼의 언어를 탄생시켰다. 타인을 배려하고 부드럽게 감싸는 것은 배려와 위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헤세의 사색은 분명 위안과 안식, 신선한 자극을 주는 동시에 일상의 행복, 자연의 아름다움, 작은 기쁨,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줄 것이다.
책속의 문장
사실 행복과 불행을 세세히 따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어차피 나는 인생에서 행복했던 날보다 불행했던 날에 더 큰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무수히 겪고, 외적인 것 외에 내적이고 더 실질적이고 필연적인 운명을 정복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내 인생은 그다지 불쌍하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나를 덮친 외적인 운명이, 모두에게 그렇듯 피할 수 없고 신에게 달린 일이라면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나만의 고유한 작품이었다. - p.13 〈외로운 밤〉 중에서
모두가 피곤한 시간, 잔잔한 바람 소리와 벽지 뒤로 흘러내리는 미세한 먼지 소리까지 크게 들리는 시간이 되고, 모든 감각이 곤두선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다. 피로감만 눈과 생각에 얇은 베일을 씌우고, 혈관을 따라 쉼 없이 흐르는 피의 소리가 들리고, 지끈거리는 머릿속에서 열을 내는 생명의 소리가 들리고, 일정하면서도 혼란스럽게 뛰는 맥박이 감지된다. - pp.16-17 〈잠 못 이루는 밤〉 중에서
아,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침묵으로 연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휴식을 모르는 우리의 예민한 신경은 메시지를 보내고 응답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우리는 말하지 않고도 몇 킬로미터의 거리를 뛰어넘어 우리의 고통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pp.46-47 〈불면증〉 중에서
인간은 수많은 것을 두려워한다. 통증, 다른 사람의 평가, 자기 자신의 마음, 잠들기, 잠에서 깨기, 외로움, 추위, 광기,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가면이자 위장에 불과하다. 실제로 인간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한 가지뿐이다. 몸을 던지는 것.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기. 안전했던 모든 것을 뿌리치고 훌쩍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큰 믿음을 경험하고 운명을 철저히 믿어본 사람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지상의 법칙을 버리고 우주에 자신을 던져 전체의 흐름에 몸을 맡길 것이다.- pp.66-67 〈두려움 극복〉 중에서
절제의 습관은 작은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능력과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능력은 누구에게나 선천적으로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려면 현대 생활이 왜곡하고 없애버린 적당한 명랑함, 사랑, 서정성이 필요하다. 주로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그런 작은 기쁨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일상의 곳곳에 무수하게 흩어져 있어서 일에 파묻혀 사는 수많은 사람의 둔감한 감성으로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 p.107 〈작은 기쁨〉 중에서
인간이 자연의 변덕이자 잔혹한 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을 너무 중요한 존재로 착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인간의 삶은 새나 개미의 삶보다 유난히 더 힘든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수월하고 아름답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삶의 잔혹함과 죽음을 회피할 수 없음을 불평하지 말고, 그런 절망을 몸으로 느끼며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의 추함과 무의미함을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그런 거친 무의미함에 맞설 수 있으며 의미를 찾으려 애써 노력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 p.112 〈행복〉 중에서

지상의 법칙에 순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치유의 목소리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작가였던 헤르만 헤세가 살아가며 사랑하며 사색했던, 그중에서도 힘들고 고통스럽고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을 치유의 언어로 정갈하게 길어올린 산문과 시편들을 모았다. 헤세는 스스로 말했듯이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던”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조차 순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고통을 겪고, 그로 인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행위들이 그에게는 왜 그토록 고통스럽고 힘겨웠을까? 그는 고뇌의 근원을 찾아 동양과 서양, 신과 자연, 현실과 이상, 삶과 죽음을 근원적이고도 조화롭게 탐색한다. 그리하여 정신의 족쇄를 풀어주는 치유의 언어, 깊은 통찰력으로 얻은 순도 높은 영혼의 언어를 탄생시켰다. 타인을 배려하고 부드럽게 감싸는 것은 배려와 위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헤세의 사색은 분명 위안과 안식, 신선한 자극을 주는 동시에 일상의 행복, 자연의 아름다움, 작은 기쁨,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줄 것이다.
책속의 문장
사실 행복과 불행을 세세히 따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어차피 나는 인생에서 행복했던 날보다 불행했던 날에 더 큰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무수히 겪고, 외적인 것 외에 내적이고 더 실질적이고 필연적인 운명을 정복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내 인생은 그다지 불쌍하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나를 덮친 외적인 운명이, 모두에게 그렇듯 피할 수 없고 신에게 달린 일이라면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나만의 고유한 작품이었다. - p.13 〈외로운 밤〉 중에서
모두가 피곤한 시간, 잔잔한 바람 소리와 벽지 뒤로 흘러내리는 미세한 먼지 소리까지 크게 들리는 시간이 되고, 모든 감각이 곤두선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다. 피로감만 눈과 생각에 얇은 베일을 씌우고, 혈관을 따라 쉼 없이 흐르는 피의 소리가 들리고, 지끈거리는 머릿속에서 열을 내는 생명의 소리가 들리고, 일정하면서도 혼란스럽게 뛰는 맥박이 감지된다. - pp.16-17 〈잠 못 이루는 밤〉 중에서
아,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침묵으로 연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휴식을 모르는 우리의 예민한 신경은 메시지를 보내고 응답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우리는 말하지 않고도 몇 킬로미터의 거리를 뛰어넘어 우리의 고통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pp.46-47 〈불면증〉 중에서
인간은 수많은 것을 두려워한다. 통증, 다른 사람의 평가, 자기 자신의 마음, 잠들기, 잠에서 깨기, 외로움, 추위, 광기,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가면이자 위장에 불과하다. 실제로 인간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한 가지뿐이다. 몸을 던지는 것.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기. 안전했던 모든 것을 뿌리치고 훌쩍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큰 믿음을 경험하고 운명을 철저히 믿어본 사람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지상의 법칙을 버리고 우주에 자신을 던져 전체의 흐름에 몸을 맡길 것이다.- pp.66-67 〈두려움 극복〉 중에서
절제의 습관은 작은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능력과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능력은 누구에게나 선천적으로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려면 현대 생활이 왜곡하고 없애버린 적당한 명랑함, 사랑, 서정성이 필요하다. 주로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그런 작은 기쁨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일상의 곳곳에 무수하게 흩어져 있어서 일에 파묻혀 사는 수많은 사람의 둔감한 감성으로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 p.107 〈작은 기쁨〉 중에서
인간이 자연의 변덕이자 잔혹한 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을 너무 중요한 존재로 착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인간의 삶은 새나 개미의 삶보다 유난히 더 힘든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수월하고 아름답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삶의 잔혹함과 죽음을 회피할 수 없음을 불평하지 말고, 그런 절망을 몸으로 느끼며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의 추함과 무의미함을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그런 거친 무의미함에 맞설 수 있으며 의미를 찾으려 애써 노력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 p.112 〈행복〉 중에서

관련 상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