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xpected Singapore 예측불가 싱가포르 여행기>는 2024년 다녀온 김지화, 이민주의 싱가포르 여행을 기록한 책입니다. 5박 6일간 방문한 장소를 순차적으로 따라가는 형식으로, 짧은 단상들과 세 종류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으로 구성했습니다.
여행 중 만난 사람, 보고 듣고 먹은 경험, 예측 불가능한 하루들을 보내며 넓어지던 생각을 담았습니다. 여행 이후 책을 만드는 동안, 그때마다의 위치에서 길어올린 기억에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덧입히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글과 사진, 책이라는 형식을 빌어 24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감각과 시간의 레이어를 짧은 호흡으로 층층히 연결한 기록물입니다.
책 속의 문장
밥을 먹고 숙소로 걸으며 신체를 총동원한다. 발은 낯선 보도블록 위를 걷고, 피부는 새로운 온도와 습도, 공기층을 감각한다. 눈은 아직은 낯선 거리를 구경하며 구글 맵과 함께 길을 찾아야 한다. 손은 흥미로운 것을 보면 카메라를 꺼낸다. 어깨에 걸린 필름 카메라를 찍을 땐 조도에 맞추어 조리개와 초점을 신중히 맞추고, 더 간편하고 빠르게 찍고 싶을 때는 구글 맵을 닫고 카메라를 연다.
아름다운 뭉게구름을 보면 민주를 앞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는다. 혹은 무언가 발견하고는 혼자 쪼그려 앉아 열심히 찍는 민주를 내가 찍는다. 이것 좀 봐, 저건 뭐지? 감탄과 질문과 혼잣말이 오간다. 각자 본 것들을 동행인이 놓치지 않게 하려고 조잘거린다.
이 모든 게 걷는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손과 입과 머리와 귀, 다리가 만드는 새로운 신체의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겠다. 공사 중이거나 물건들을 아무렇게 쌓아둔 풍경이더라도 그 자체로 흥미롭다. 여행이라는 며칠의 시간이 스스로를 자연스럽게 예민하고 기민한 신체로 탈바꿈한다. 많은 자극을 널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흡수한 것들은 즐거운 쪽으로 해석해 버리고, 졸지에 명랑한 사람이 된다. 이 명랑의 유통기한은 과연 언제까지일까? 아마도 여행이 끝나고 비행기에 오르는 때까지겠지만, 우리에게는 소비기한이 있다. 그러니까 이후에도 적당한 명랑함을 유지해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일상에서도 자주 산책하기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부지런히 카메라로 장면들을 담기로 생각한다. ‘DAY 02. | 24.08.14. | Wed’ 일부 발췌
종이 지도를 가지고 여행 중인 듯한 부부가 기억난다. (…중략) 도대체 어떻게 GPS 없이 길을 찾아 운전하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날 용기를 내는 것이 가능한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당연히 모두가 더 자주 길을 잃고 헤맸을 것이다. 아주 계획적인 사람이라면 계획에 헤매는 시간까지 넣어야 할 정도로 길을 잃는다는 것이 일상이지 않았을까.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해냈다는 기쁨과 안도감이 들었으리라. 지금처럼 헤맬 일이 좀처럼 없는 시대엔 도착 후의 허무감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많고, 곧바로 다음 도착지로 향하기에 바쁜데 말이다.
시대에 따라 도착이라는 개념이 달라지는 것이 흥미로워 이를 마음속으로 굴리며 문지른다. 만약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시대가 좋을까. 삶은 유한하므로 가장 빠른 경로로, 지금 시대와 같이 효율적인 길을 찾아 도착한다면 시간을 아끼는 것이고, 그만큼 많고 다양한 곳들을 빠르게 누빌 수 있다는 것이 좋을 테다. 하지만 동시에 도착만을 위해 사는 것처럼 목메기 쉽다는 생각을 한다. 헤매거나 기다리는 일을 무용하다고 생각한다면, 의도한 적 없어도 헤맴 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인생이 더 무용하고 허무하게 느껴지기 쉬울 것이므로. 그러기 싫다는 마음이 들자, 그렇다면 모든 곳이 목적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현재의 시간과 장소를 지나가는 순간으로 치부하지 않고, 열심히 존재하기로 결심한다면 그럴 수 있다. 그렇게 지금 내가 살아 움직이고 숨 쉬고 있는 곳을 목적지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큰 목적지가 아니라도 좋다. 작은 목적지를 더 자주 만들고 싶다. ‘DAY 04. | 24.08.16. | Fri’ 일부 발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요가원에 도착하자, 선생님이 밝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중략) 멜로우 플로우는 막상 들어보니 예상과는 다르게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심지어 영어 구령으로 하는 요가는 처음이었는데 낯설어서 더 어려웠다.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혼미함이 선사하는 물아일체의 감각이야말로 요가에서 참 좋아하는 몰입의 단계이다. 내가 요가를 하는 건지, 요가가 나를 하는 건지 모르는 지경, 땀을 뚝뚝 흘리며 생각이 멈춰지고 진공 상태에서 들려오는 한 줄기 구령을 따라가며 그저 몸을 움직이게 되는 것. ‘DAY 05. | 24.08.17. | Sat’ 일부 발췌
개인의 영혼을 울리는 음식이 소울푸드라면, 이렇게 부모님과 함께 먹고 싶은 음식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푸드Food 사이에 러브love라는 단어를 붙인 푸러브드Fooloved라는 표현이 두둥실 떠오른다. 음식 사이에 끼어들어 간 사랑이랄까? 보살핌이 깃든 음식을 먹고 컸으니, 이제는 큰 다음의 내가 보는 새로운 세상에 초대하고 싶은 마음. 삶의 온 무게 중심을 내게 두느라 오래도록 못 보았을 것들을 함께 보고 싶은 마음. 내가 세상에서 감각하는 행복과 에너지를 전이시키는 가장 간단하고 직관적인 방식은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이다. (…중략) 그래서 음식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애정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수단이다. 비록 전해지지 않더라도 일단 확실한 에너지로 기능한다. 그러므로 푸러브드는 현존하는 훌륭한 언어의 일종인 셈. ‘DAY 05. | 24.08.17. | Sat’ 일부 발췌
여행의 끝은 아쉬우리라 예상했는데, 끝자락의 새벽에 쥬얼 창이 공항의 큰 창문 앞에 널브러져 주근깨가 생기도록 큰 광채를 맞는 동안, 서울에서 얌전히 멈춘 채 기다리고 있는 나의 삶의 궤도에 잘 올라타자는 자신과 기운이 피어오른다. 그 어떤 비타민과 오메가3, 레몬즙과 올리브유, 사과와 땅콩버터보다도 강력하고 효과적인 것은 바로 새벽 광채의 태양을 맞이하는 것.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새벽은 매일 찾아온다. 잠들기 전 어떤 마음이었건 새 마음을 다잡고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내게 이미 주어져 있다. ‘DAY 07. | 24.08.19. | Mon’ 일부 발췌
시간이 야속하게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낀다면, 다녀왔거나 다녀올 여행 기록으로 무언가 만들어보기를 추천한다. 만듦의 과정 속에서 늘이고 싶은 만큼 늘여질 것이고, 늘여낸 것을 마음대로 맺을 수도 있다. 마치 불 속에서 녹은 유리가 액체처럼 늘어나고, 다시 굳혀져 새로운 형태가 되듯. 과거는 지나갔어도 아직 응고되지 않았다. 살살 가열해 녹여볼 수 있다.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딱딱한 시간을 언제든지 새로운 형태로 빚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참 매력적이지 않은지. 닫는 글 일부 발췌
















<Unexpected Singapore 예측불가 싱가포르 여행기>는 2024년 다녀온 김지화, 이민주의 싱가포르 여행을 기록한 책입니다. 5박 6일간 방문한 장소를 순차적으로 따라가는 형식으로, 짧은 단상들과 세 종류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으로 구성했습니다.
여행 중 만난 사람, 보고 듣고 먹은 경험, 예측 불가능한 하루들을 보내며 넓어지던 생각을 담았습니다. 여행 이후 책을 만드는 동안, 그때마다의 위치에서 길어올린 기억에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덧입히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글과 사진, 책이라는 형식을 빌어 24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감각과 시간의 레이어를 짧은 호흡으로 층층히 연결한 기록물입니다.
책 속의 문장
밥을 먹고 숙소로 걸으며 신체를 총동원한다. 발은 낯선 보도블록 위를 걷고, 피부는 새로운 온도와 습도, 공기층을 감각한다. 눈은 아직은 낯선 거리를 구경하며 구글 맵과 함께 길을 찾아야 한다. 손은 흥미로운 것을 보면 카메라를 꺼낸다. 어깨에 걸린 필름 카메라를 찍을 땐 조도에 맞추어 조리개와 초점을 신중히 맞추고, 더 간편하고 빠르게 찍고 싶을 때는 구글 맵을 닫고 카메라를 연다.
아름다운 뭉게구름을 보면 민주를 앞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는다. 혹은 무언가 발견하고는 혼자 쪼그려 앉아 열심히 찍는 민주를 내가 찍는다. 이것 좀 봐, 저건 뭐지? 감탄과 질문과 혼잣말이 오간다. 각자 본 것들을 동행인이 놓치지 않게 하려고 조잘거린다.
이 모든 게 걷는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손과 입과 머리와 귀, 다리가 만드는 새로운 신체의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겠다. 공사 중이거나 물건들을 아무렇게 쌓아둔 풍경이더라도 그 자체로 흥미롭다. 여행이라는 며칠의 시간이 스스로를 자연스럽게 예민하고 기민한 신체로 탈바꿈한다. 많은 자극을 널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흡수한 것들은 즐거운 쪽으로 해석해 버리고, 졸지에 명랑한 사람이 된다. 이 명랑의 유통기한은 과연 언제까지일까? 아마도 여행이 끝나고 비행기에 오르는 때까지겠지만, 우리에게는 소비기한이 있다. 그러니까 이후에도 적당한 명랑함을 유지해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일상에서도 자주 산책하기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부지런히 카메라로 장면들을 담기로 생각한다. ‘DAY 02. | 24.08.14. | Wed’ 일부 발췌
종이 지도를 가지고 여행 중인 듯한 부부가 기억난다. (…중략) 도대체 어떻게 GPS 없이 길을 찾아 운전하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날 용기를 내는 것이 가능한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당연히 모두가 더 자주 길을 잃고 헤맸을 것이다. 아주 계획적인 사람이라면 계획에 헤매는 시간까지 넣어야 할 정도로 길을 잃는다는 것이 일상이지 않았을까.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해냈다는 기쁨과 안도감이 들었으리라. 지금처럼 헤맬 일이 좀처럼 없는 시대엔 도착 후의 허무감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많고, 곧바로 다음 도착지로 향하기에 바쁜데 말이다.
시대에 따라 도착이라는 개념이 달라지는 것이 흥미로워 이를 마음속으로 굴리며 문지른다. 만약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시대가 좋을까. 삶은 유한하므로 가장 빠른 경로로, 지금 시대와 같이 효율적인 길을 찾아 도착한다면 시간을 아끼는 것이고, 그만큼 많고 다양한 곳들을 빠르게 누빌 수 있다는 것이 좋을 테다. 하지만 동시에 도착만을 위해 사는 것처럼 목메기 쉽다는 생각을 한다. 헤매거나 기다리는 일을 무용하다고 생각한다면, 의도한 적 없어도 헤맴 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인생이 더 무용하고 허무하게 느껴지기 쉬울 것이므로. 그러기 싫다는 마음이 들자, 그렇다면 모든 곳이 목적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현재의 시간과 장소를 지나가는 순간으로 치부하지 않고, 열심히 존재하기로 결심한다면 그럴 수 있다. 그렇게 지금 내가 살아 움직이고 숨 쉬고 있는 곳을 목적지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큰 목적지가 아니라도 좋다. 작은 목적지를 더 자주 만들고 싶다. ‘DAY 04. | 24.08.16. | Fri’ 일부 발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요가원에 도착하자, 선생님이 밝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중략) 멜로우 플로우는 막상 들어보니 예상과는 다르게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심지어 영어 구령으로 하는 요가는 처음이었는데 낯설어서 더 어려웠다.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혼미함이 선사하는 물아일체의 감각이야말로 요가에서 참 좋아하는 몰입의 단계이다. 내가 요가를 하는 건지, 요가가 나를 하는 건지 모르는 지경, 땀을 뚝뚝 흘리며 생각이 멈춰지고 진공 상태에서 들려오는 한 줄기 구령을 따라가며 그저 몸을 움직이게 되는 것. ‘DAY 05. | 24.08.17. | Sat’ 일부 발췌
개인의 영혼을 울리는 음식이 소울푸드라면, 이렇게 부모님과 함께 먹고 싶은 음식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푸드Food 사이에 러브love라는 단어를 붙인 푸러브드Fooloved라는 표현이 두둥실 떠오른다. 음식 사이에 끼어들어 간 사랑이랄까? 보살핌이 깃든 음식을 먹고 컸으니, 이제는 큰 다음의 내가 보는 새로운 세상에 초대하고 싶은 마음. 삶의 온 무게 중심을 내게 두느라 오래도록 못 보았을 것들을 함께 보고 싶은 마음. 내가 세상에서 감각하는 행복과 에너지를 전이시키는 가장 간단하고 직관적인 방식은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이다. (…중략) 그래서 음식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애정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수단이다. 비록 전해지지 않더라도 일단 확실한 에너지로 기능한다. 그러므로 푸러브드는 현존하는 훌륭한 언어의 일종인 셈. ‘DAY 05. | 24.08.17. | Sat’ 일부 발췌
여행의 끝은 아쉬우리라 예상했는데, 끝자락의 새벽에 쥬얼 창이 공항의 큰 창문 앞에 널브러져 주근깨가 생기도록 큰 광채를 맞는 동안, 서울에서 얌전히 멈춘 채 기다리고 있는 나의 삶의 궤도에 잘 올라타자는 자신과 기운이 피어오른다. 그 어떤 비타민과 오메가3, 레몬즙과 올리브유, 사과와 땅콩버터보다도 강력하고 효과적인 것은 바로 새벽 광채의 태양을 맞이하는 것.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새벽은 매일 찾아온다. 잠들기 전 어떤 마음이었건 새 마음을 다잡고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내게 이미 주어져 있다. ‘DAY 07. | 24.08.19. | Mon’ 일부 발췌
시간이 야속하게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낀다면, 다녀왔거나 다녀올 여행 기록으로 무언가 만들어보기를 추천한다. 만듦의 과정 속에서 늘이고 싶은 만큼 늘여질 것이고, 늘여낸 것을 마음대로 맺을 수도 있다. 마치 불 속에서 녹은 유리가 액체처럼 늘어나고, 다시 굳혀져 새로운 형태가 되듯. 과거는 지나갔어도 아직 응고되지 않았다. 살살 가열해 녹여볼 수 있다.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딱딱한 시간을 언제든지 새로운 형태로 빚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참 매력적이지 않은지. 닫는 글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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