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구옥 매매에 관한 사사로운 르포르타주
서울 한복판이지만 고즈넉한 마을이면 좋겠고, 아파트 말고 단독주택이면 좋겠고, 금수저 아니니까 시세보다 저렴해야겠고, 프리랜서지만 대출도 좀 해주세요. 감히 이 시대, 이 나라에서? 부동산과 은행에서 문전박대당하기 딱 좋은 조건이지만 무엇 하나 양보할 수 없다. 이 여자에게 '어디에 살 것인가'를 정하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서울 외곽 어느 신도시에 적당한 방3화2 아파트 하나 샀으면 인생이 한층 수월했을 텐데, 대한민국 표준에 가까운 그 선택을 발로 걷어차고 굳이 서울 한복판 서촌의 오래된 단독주택을 매입했다. 그 힘들다는 내집마련에 멋지게 성공하고 신화의 주인공이 될 줄 알았건만. 성공 신화는커녕 낭패로 가득한 무용담만 줄줄이 쌓였다. 21세기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 ‘낭만’을 운운한 대가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자기만의 주거 형태를 고집하며 내집마련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약간은 짠하고 서늘한 미리보기가 되어줄 주택매입에 관한 기록.
책속의 문장
대학 신입생 시절, 선배 언니 A의 자취방에 놀러 간 날을 기억한다. 언니와 나를 비롯해 지방에서 올라온 무리는 모두 공평하게 돈이 없었고, 대체로 비슷하게 허름한 원룸이나 하숙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살았고, 각자의 방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나 술집에 앉아있는 시간이 긴 시절이었다. 그때 우리에게 주거지란 단지 술에 취한 몸을 누일 곳이거나, 더 이상 문 연 술집이 없는 늦은 시간 소주병과 과자를 들고 모여앉을 곳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가끔 A언니는 맨정신일 때 나를 자기 자취방에 데려가 함께 음악을 듣거나 수다를 떨곤 했다. 당시 나는 하숙집에서 방 한 칸을 친하지도 않은 타과 룸메와 같이 쓰고 있었는데, A언니의 방은 분명 혼자 쓰는데도 나의 방보다 열악해 보였다. 작은 방 세 개와 좁은 거실이 딸린 빌라에서 자취생들이 방 하나씩 세를 얻어 사는 공동 주거 형태였는데, 언니의 방은 그 작은 방들 중에서도 특별히 더 작은 방 같았다. 요즘 아파트로 치면 대략 팬트리 정도 되는 크기일 것이다. 혹은 그보다 더 작거나. 방엔 좁은 책상 하나 외에 아무런 가구도 없었다. 책상 옆 방바닥에 언니와 내가 몸을 누이면 더 이상 남는 공간 없이 딱 들어맞았다. 꼭 관짝 같은 그 공간에 처음 놀러 갔던 날, 언니는 없는 돈을 탈탈 털어 학교 앞 과일 가게에서 딸기 한 봉지를 샀다. 우리 같은 자취생들은 과일 먹을 일이 너무 없지 않냐는 말과 함께. 검은 비닐에 담긴 딸기를 언니가 공용 주방에서 씻는 동안 옆방에 거주하는 남학생이 러닝셔츠와 사각팬티 바람으로 거실을 오갔지만 서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몇 개 되지 않는 딸기를 손으로 집어먹으며 언니와 나는 김광석 노래를 듣고 작은 목소리로 두런두런 수다를 떨다 잠들었다. 언니가 다른 자취방으로 이사 가기 전날에도 나는 그 방에 놀러 갔는데, 그날 밤 언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쪽 구석 벽에 연필을 들고 아주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었다.
"여기 이OO가 있었다."
사각사각 연필 소리를 내며 이름을 새기는 언니의 옆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평소의 온화하고 은은한 미소 그대로였지만 조금은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그건 떠나고 싶으면서도 떠나기 싫은 얼굴이었다. 오래 머무른 여행지를 떠나며 방명록을 작성하는 여행자의 얼굴과도 닮아 있었다. 언니는 말했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내가 여기 있었다는 걸 이 방은 기억해 줄 거라고. 심지어 본인이 잊더라도.
그날 이후 나는 믿게 되었다. 누군가 오래 머물다 떠난 공간엔 그 누군가의 일부가 여전히 공간에 남아있고, 그가 남기고 간 존재의 일부를 공간이 꾸준히 응시하며 기억할 거라고. 나도 특별히 애정을 품었던, 떠나기 싫었던 집들에 두어 번은 그렇게 연필로 남겨두었다. 김윤미가 여기에 있었다.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면 도배를 다시 해서 사라질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존재의 일부를 여기에 두고 간다는 어떤 증거를.
-나를 두고 온 공간들 中
전국 바보 경연대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제일가는 바보를 뽑는 대회였다. 사소한 실수로 억울하게 끌려 나온 작은 바보들을 제치고 '반박 불가' 수준의 큰 바보들 몇 명이 결선에 올랐다. 결선 진출자들의 다양한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다. 짝사랑에게 성추행당하고도 사랑을 멈추지 않은 여고생, 면접장에서 스페인을 남미라고 대답한 구직자, 오랜 시간에 걸쳐 힘들게 마음먹은 퇴사 결심을 '연봉 올려줄게' 한 마디에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 직장인…. 그래도 나는 쟤들보단 좀 낫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혀를 끌끌 차던 내 이름표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구옥을 매입하는 중년'이라는 타이틀이 적혀 있었다. 대망의 1등 발표 순간. 두구두구. 사회자가 상기된 표정으로 외친다.
"대한민국 바보 1등은 바로! 축하합니다! 김윤미 씨!“
와하하하! 객석에선 박수 소리 대신 커다란 비웃음이 들린다. 아니, 내가 그렇게까지 바보라고? 다들 이 정도 실수는 하고 사는 거 아닌가. 어째서 내가 쟤네보다 더 큰 바보라는 거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박수를 보내는 나머지 결선 진출자들을 노려봤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디서 많이들 본 얼굴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나였다. 10대, 20대, 30대의 김윤미. 모두 같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이 내게 건네는 말을 어쩐지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너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별수 없이 너구나.
그런 대회가 있을 리 만무하니 이것은 당연히 꿈 이야기다. 온실이 위반건축물이라는 사실과 위반건축물이 있으면 대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고민하던 나날 중의 어떤 아침이었다. 불쾌한 기분으로 눈을 뜨며 생각했다. 이건 꿈이 아니라 조롱인데. 잠든 내 귓가에서 누군가 조잘조잘 떠들어댄 조롱. 너는 말이지. 네 인생의 그 어떤 바보짓보다도 더 큰 바보짓을 지금 하는 거라고. 틀린 말이 하나도 없으니 화가 나지 않았다. 후배가 '존나' 꾸기 시작했다던 악몽이 이런 건가. 근데 난 아직 대출받기도 전인데. 우두커니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 얼마 남지 않은 긍정을 끌어모았다. 큰 바보 타이틀을 얻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망하진 않은 바보이니 다행이야. 그리고 바보짓을 수습할 방법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학교에 보내고 3층 작업실에 올라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니터엔 전날 밤늦게까지 눈이 뚫어져라 쳐다본 내용들이 수십 개의 검색 창에 떠 있었다. 건폐율, 용적률, 위반건축물 양성화, 도시개발계획, 고도 제한…. 분명 한글인데 생소하기 짝이 없는 용어들이 마구잡이로 널려 있었다. 각종 외계어와 치열하게 싸워온 흔적들.
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그리곤 창들을 하나씩 끄고 새로운 창을 열길 반복했다.
-바보가 사는 집(上) 中








도심 구옥 매매에 관한 사사로운 르포르타주
서울 한복판이지만 고즈넉한 마을이면 좋겠고, 아파트 말고 단독주택이면 좋겠고, 금수저 아니니까 시세보다 저렴해야겠고, 프리랜서지만 대출도 좀 해주세요. 감히 이 시대, 이 나라에서? 부동산과 은행에서 문전박대당하기 딱 좋은 조건이지만 무엇 하나 양보할 수 없다. 이 여자에게 '어디에 살 것인가'를 정하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서울 외곽 어느 신도시에 적당한 방3화2 아파트 하나 샀으면 인생이 한층 수월했을 텐데, 대한민국 표준에 가까운 그 선택을 발로 걷어차고 굳이 서울 한복판 서촌의 오래된 단독주택을 매입했다. 그 힘들다는 내집마련에 멋지게 성공하고 신화의 주인공이 될 줄 알았건만. 성공 신화는커녕 낭패로 가득한 무용담만 줄줄이 쌓였다. 21세기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 ‘낭만’을 운운한 대가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자기만의 주거 형태를 고집하며 내집마련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약간은 짠하고 서늘한 미리보기가 되어줄 주택매입에 관한 기록.
책속의 문장
대학 신입생 시절, 선배 언니 A의 자취방에 놀러 간 날을 기억한다. 언니와 나를 비롯해 지방에서 올라온 무리는 모두 공평하게 돈이 없었고, 대체로 비슷하게 허름한 원룸이나 하숙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살았고, 각자의 방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나 술집에 앉아있는 시간이 긴 시절이었다. 그때 우리에게 주거지란 단지 술에 취한 몸을 누일 곳이거나, 더 이상 문 연 술집이 없는 늦은 시간 소주병과 과자를 들고 모여앉을 곳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가끔 A언니는 맨정신일 때 나를 자기 자취방에 데려가 함께 음악을 듣거나 수다를 떨곤 했다. 당시 나는 하숙집에서 방 한 칸을 친하지도 않은 타과 룸메와 같이 쓰고 있었는데, A언니의 방은 분명 혼자 쓰는데도 나의 방보다 열악해 보였다. 작은 방 세 개와 좁은 거실이 딸린 빌라에서 자취생들이 방 하나씩 세를 얻어 사는 공동 주거 형태였는데, 언니의 방은 그 작은 방들 중에서도 특별히 더 작은 방 같았다. 요즘 아파트로 치면 대략 팬트리 정도 되는 크기일 것이다. 혹은 그보다 더 작거나. 방엔 좁은 책상 하나 외에 아무런 가구도 없었다. 책상 옆 방바닥에 언니와 내가 몸을 누이면 더 이상 남는 공간 없이 딱 들어맞았다. 꼭 관짝 같은 그 공간에 처음 놀러 갔던 날, 언니는 없는 돈을 탈탈 털어 학교 앞 과일 가게에서 딸기 한 봉지를 샀다. 우리 같은 자취생들은 과일 먹을 일이 너무 없지 않냐는 말과 함께. 검은 비닐에 담긴 딸기를 언니가 공용 주방에서 씻는 동안 옆방에 거주하는 남학생이 러닝셔츠와 사각팬티 바람으로 거실을 오갔지만 서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몇 개 되지 않는 딸기를 손으로 집어먹으며 언니와 나는 김광석 노래를 듣고 작은 목소리로 두런두런 수다를 떨다 잠들었다. 언니가 다른 자취방으로 이사 가기 전날에도 나는 그 방에 놀러 갔는데, 그날 밤 언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쪽 구석 벽에 연필을 들고 아주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었다.
"여기 이OO가 있었다."
사각사각 연필 소리를 내며 이름을 새기는 언니의 옆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평소의 온화하고 은은한 미소 그대로였지만 조금은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그건 떠나고 싶으면서도 떠나기 싫은 얼굴이었다. 오래 머무른 여행지를 떠나며 방명록을 작성하는 여행자의 얼굴과도 닮아 있었다. 언니는 말했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내가 여기 있었다는 걸 이 방은 기억해 줄 거라고. 심지어 본인이 잊더라도.
그날 이후 나는 믿게 되었다. 누군가 오래 머물다 떠난 공간엔 그 누군가의 일부가 여전히 공간에 남아있고, 그가 남기고 간 존재의 일부를 공간이 꾸준히 응시하며 기억할 거라고. 나도 특별히 애정을 품었던, 떠나기 싫었던 집들에 두어 번은 그렇게 연필로 남겨두었다. 김윤미가 여기에 있었다.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면 도배를 다시 해서 사라질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존재의 일부를 여기에 두고 간다는 어떤 증거를.
-나를 두고 온 공간들 中
전국 바보 경연대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제일가는 바보를 뽑는 대회였다. 사소한 실수로 억울하게 끌려 나온 작은 바보들을 제치고 '반박 불가' 수준의 큰 바보들 몇 명이 결선에 올랐다. 결선 진출자들의 다양한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다. 짝사랑에게 성추행당하고도 사랑을 멈추지 않은 여고생, 면접장에서 스페인을 남미라고 대답한 구직자, 오랜 시간에 걸쳐 힘들게 마음먹은 퇴사 결심을 '연봉 올려줄게' 한 마디에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 직장인…. 그래도 나는 쟤들보단 좀 낫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혀를 끌끌 차던 내 이름표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구옥을 매입하는 중년'이라는 타이틀이 적혀 있었다. 대망의 1등 발표 순간. 두구두구. 사회자가 상기된 표정으로 외친다.
"대한민국 바보 1등은 바로! 축하합니다! 김윤미 씨!“
와하하하! 객석에선 박수 소리 대신 커다란 비웃음이 들린다. 아니, 내가 그렇게까지 바보라고? 다들 이 정도 실수는 하고 사는 거 아닌가. 어째서 내가 쟤네보다 더 큰 바보라는 거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박수를 보내는 나머지 결선 진출자들을 노려봤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디서 많이들 본 얼굴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나였다. 10대, 20대, 30대의 김윤미. 모두 같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이 내게 건네는 말을 어쩐지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너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별수 없이 너구나.
그런 대회가 있을 리 만무하니 이것은 당연히 꿈 이야기다. 온실이 위반건축물이라는 사실과 위반건축물이 있으면 대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고민하던 나날 중의 어떤 아침이었다. 불쾌한 기분으로 눈을 뜨며 생각했다. 이건 꿈이 아니라 조롱인데. 잠든 내 귓가에서 누군가 조잘조잘 떠들어댄 조롱. 너는 말이지. 네 인생의 그 어떤 바보짓보다도 더 큰 바보짓을 지금 하는 거라고. 틀린 말이 하나도 없으니 화가 나지 않았다. 후배가 '존나' 꾸기 시작했다던 악몽이 이런 건가. 근데 난 아직 대출받기도 전인데. 우두커니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 얼마 남지 않은 긍정을 끌어모았다. 큰 바보 타이틀을 얻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망하진 않은 바보이니 다행이야. 그리고 바보짓을 수습할 방법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학교에 보내고 3층 작업실에 올라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니터엔 전날 밤늦게까지 눈이 뚫어져라 쳐다본 내용들이 수십 개의 검색 창에 떠 있었다. 건폐율, 용적률, 위반건축물 양성화, 도시개발계획, 고도 제한…. 분명 한글인데 생소하기 짝이 없는 용어들이 마구잡이로 널려 있었다. 각종 외계어와 치열하게 싸워온 흔적들.
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그리곤 창들을 하나씩 끄고 새로운 창을 열길 반복했다.
-바보가 사는 집(上)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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