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런던을 무대로 펼쳐지는 한 편의 그래픽 디자인 드라마
영국 그래픽 디자이너 리처드 홀리스와 화이트채플 미술 갤러리의 협업을 담은 『리처드 홀리스, 화이트채플을 디자인하다』가 출간되었다. 한 디자이너의 작업을 특정 시기, 특정 의뢰처에 집중해 다룬 이 책은, 그동안 그래픽 디자인을 서술한 많은 책들이 왜 그리 지루했는지 극적으로 보여 준다. 시각적 결과물이 아닌 사회적 활동으로서 그래픽 디자인이 그에 맞는 인물, 사건, 배경을 제대로 갖추고 들려주는 이야기는 기대 이상이다.
두 주인공, 만나기 전
책은 두 주인공인 리처드 홀리스와 화이트채플이 서로 만나기 전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1872년 세인트메리 성당에서 부제로 일하던 새뮤얼 바넷은 런던 주교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당시 “교구에서 가장 끔찍한 사목구로, 주민 대부분이 범죄자”인 런던 동부 세인트주드의 허물어진 교회 하나를 맡아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갓 결혼한 바넷 부부는 이곳에 정착해 첫 사업으로 빈민을 위한 도서관을 짓는다. 1881년 “회화와 도자기, 자수 등 진귀품을 대중에게 보여 주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처음 연 전시회에 약 1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이후 전시는 연례행사가 된다. 런던 최초의 공공 미술관 중 하나인 화이트채플 미술 갤러리의 시작이었다. 교회 인근에서 일명 ‘잭 더 리퍼’가 연쇄 살인을 저지르던 1888년에는 약 5만 5천 명의 관람객이 전시회를 찾았다. 이후 1901년 정식으로 문을 연 화이트채플은 서서히 “영국을 선도하는 동시대 미술 중심지”로서 명성을 쌓아 나간다. 특히 현대 미술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이것이 미래』(1956) 전시를 열고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을 영국에 소개한 브라이언 로버트슨 관장 시절(1952~68) 무렵에는 “화이트채플에서 전시회를 열고, 도판과 함께 잘 정리된 도록을 내는 것은 야심적인 미술가의 이력에서 결정적인 순간이자 평단의 인정에 성큼 다가서는 길이었다.”
또 하나의 주인공 리처드 홀리스는 1934년 런던 서부 첼시 지역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은 그리 어렵지 않아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1949년까지도 책을 만들 때 “종이 두께, 여백, 활자 크기, 심지어 한 면당 단어 수까지 제한되던” 전쟁 상황은 그에게 평생 이어지는 청교도적 태도를 새긴다. 이후 첼시 미술 대학에 진학해 미술가를 꿈꾸던 그는 흠모하던 미술가 윌리엄 턴불로부터 “자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어야겠군”이라는 작품 평을 듣고 낙담한 후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교육자로서 경력을 쌓아 나갔다.
화이트채플과 리처드 홀리스, 만남과 협업
1969년 여름, 화이트채플의 신임 관장 마크 글레이즈브룩이 미술관 편지지를 디자인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센트럴 대학을 찾았을 때, 마침 학교에 남아 있던 사람은 리처드 홀리스뿐이었다. 홀리스는 마크에게 “원하면 내가 하나 만들어 보겠다. 쓰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제안한다. 리처드 홀리스와 화이트채플의 첫 만남이자, 이후 장기간 이어진 협업의 시작이었다.
협업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1969~73년 마크 글레이즈브룩이 관장을 지내던 시절과, 훗날 테이트 관장으로 영국 미술계를 이끌 니컬러스 서로타가 관장을 맡았던 1978~85년이다. 이 시기 리처드 홀리스는 사실상 화이트채플 전속 디자이너로 포스터와 도록은 물론 서식, 소식지 등을 도맡아 디자인했다.
저자는 협업이 이뤄지던 시기 화이트채플에서 열렸던 전시와 프로젝트, 홀리스의 작업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전임 관장과 큐레이터, 전시 작가, 직원들은 물론 관계했던 디자이너, 주변 인물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화이트채플과 리처드 홀리스의 이야기는 그래픽 디자인을 서술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장기간 이어지는 협업을 통해 미술관의 시각적 정체성이 어떻게 (지금의 의식적인 브랜딩과 달리) 형성되었는지 살피고, 홀리스의 디자인 방법론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꼼꼼히 비교하고, 각 디자인에서 이뤄진 선택들을 개별적인 전시 맥락과 화이트채플이라는 미술관이 처한 상황에 비춰 분석한다. 이는 그저 미술관이 전시 홍보물 디자인을 의뢰하고, 디자이너가 그럴듯한 포스터를 내놓는 과정으로 귀결하지 않는다. 20세기 벽두에 문을 연 공공 미술관이 시대 변화에 따라 그 임무를 갱신하고, 런던 동부라는 지역적 요구와 세계 미술사라는 특수하고도 보편적인 흐름 사이에서 (해당 지역에 봉사하는 동시에 동시대 미술을 선도하고자) 요동치는 동안, 점차 전문화되던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직종이 사회적, 기술적 변화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묻고 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세기 런던을 무대로 펼쳐지는 한 편의 그래픽 디자인 드라마
영국 그래픽 디자이너 리처드 홀리스와 화이트채플 미술 갤러리의 협업을 담은 『리처드 홀리스, 화이트채플을 디자인하다』가 출간되었다. 한 디자이너의 작업을 특정 시기, 특정 의뢰처에 집중해 다룬 이 책은, 그동안 그래픽 디자인을 서술한 많은 책들이 왜 그리 지루했는지 극적으로 보여 준다. 시각적 결과물이 아닌 사회적 활동으로서 그래픽 디자인이 그에 맞는 인물, 사건, 배경을 제대로 갖추고 들려주는 이야기는 기대 이상이다.
두 주인공, 만나기 전
책은 두 주인공인 리처드 홀리스와 화이트채플이 서로 만나기 전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1872년 세인트메리 성당에서 부제로 일하던 새뮤얼 바넷은 런던 주교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당시 “교구에서 가장 끔찍한 사목구로, 주민 대부분이 범죄자”인 런던 동부 세인트주드의 허물어진 교회 하나를 맡아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갓 결혼한 바넷 부부는 이곳에 정착해 첫 사업으로 빈민을 위한 도서관을 짓는다. 1881년 “회화와 도자기, 자수 등 진귀품을 대중에게 보여 주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처음 연 전시회에 약 1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이후 전시는 연례행사가 된다. 런던 최초의 공공 미술관 중 하나인 화이트채플 미술 갤러리의 시작이었다. 교회 인근에서 일명 ‘잭 더 리퍼’가 연쇄 살인을 저지르던 1888년에는 약 5만 5천 명의 관람객이 전시회를 찾았다. 이후 1901년 정식으로 문을 연 화이트채플은 서서히 “영국을 선도하는 동시대 미술 중심지”로서 명성을 쌓아 나간다. 특히 현대 미술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이것이 미래』(1956) 전시를 열고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을 영국에 소개한 브라이언 로버트슨 관장 시절(1952~68) 무렵에는 “화이트채플에서 전시회를 열고, 도판과 함께 잘 정리된 도록을 내는 것은 야심적인 미술가의 이력에서 결정적인 순간이자 평단의 인정에 성큼 다가서는 길이었다.”
또 하나의 주인공 리처드 홀리스는 1934년 런던 서부 첼시 지역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은 그리 어렵지 않아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1949년까지도 책을 만들 때 “종이 두께, 여백, 활자 크기, 심지어 한 면당 단어 수까지 제한되던” 전쟁 상황은 그에게 평생 이어지는 청교도적 태도를 새긴다. 이후 첼시 미술 대학에 진학해 미술가를 꿈꾸던 그는 흠모하던 미술가 윌리엄 턴불로부터 “자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어야겠군”이라는 작품 평을 듣고 낙담한 후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교육자로서 경력을 쌓아 나갔다.
화이트채플과 리처드 홀리스, 만남과 협업
1969년 여름, 화이트채플의 신임 관장 마크 글레이즈브룩이 미술관 편지지를 디자인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센트럴 대학을 찾았을 때, 마침 학교에 남아 있던 사람은 리처드 홀리스뿐이었다. 홀리스는 마크에게 “원하면 내가 하나 만들어 보겠다. 쓰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제안한다. 리처드 홀리스와 화이트채플의 첫 만남이자, 이후 장기간 이어진 협업의 시작이었다.
협업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1969~73년 마크 글레이즈브룩이 관장을 지내던 시절과, 훗날 테이트 관장으로 영국 미술계를 이끌 니컬러스 서로타가 관장을 맡았던 1978~85년이다. 이 시기 리처드 홀리스는 사실상 화이트채플 전속 디자이너로 포스터와 도록은 물론 서식, 소식지 등을 도맡아 디자인했다.
저자는 협업이 이뤄지던 시기 화이트채플에서 열렸던 전시와 프로젝트, 홀리스의 작업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전임 관장과 큐레이터, 전시 작가, 직원들은 물론 관계했던 디자이너, 주변 인물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화이트채플과 리처드 홀리스의 이야기는 그래픽 디자인을 서술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장기간 이어지는 협업을 통해 미술관의 시각적 정체성이 어떻게 (지금의 의식적인 브랜딩과 달리) 형성되었는지 살피고, 홀리스의 디자인 방법론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꼼꼼히 비교하고, 각 디자인에서 이뤄진 선택들을 개별적인 전시 맥락과 화이트채플이라는 미술관이 처한 상황에 비춰 분석한다. 이는 그저 미술관이 전시 홍보물 디자인을 의뢰하고, 디자이너가 그럴듯한 포스터를 내놓는 과정으로 귀결하지 않는다. 20세기 벽두에 문을 연 공공 미술관이 시대 변화에 따라 그 임무를 갱신하고, 런던 동부라는 지역적 요구와 세계 미술사라는 특수하고도 보편적인 흐름 사이에서 (해당 지역에 봉사하는 동시에 동시대 미술을 선도하고자) 요동치는 동안, 점차 전문화되던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직종이 사회적, 기술적 변화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묻고 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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