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얼대는 시체를』은 인간성도 역사도 없는 ‘시체’로서 인터넷 시대의 대중문화 산업을 비평하는 문화이론서입니다.
저서 『대체 현실 유령』을 쓴 ‘인터넷의 심해 잠수부’이자 대중음악 비평가 나원영은 ‘사용 중’의 두 번째 참여자로서 자신이 사용해 볼 상대를 찾습니다. 그가 선택하는 건 저서 『포에버리즘』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문화이론가 그래프턴 태너(Grafton Tanner)의 책 『웅얼대는 시체』입니다. 이에 따라 『웅얼대는 시체를』의 1부에는 그래프턴 태너의 책 전문이 나원영 자신의 번역으로 수록됩니다. 그리고 나원영은 이 1부를—『웅얼대는 시체』를—사용하여 2부 「시체가 벌떡!」을 씁니다.
1부 ‘웅얼대는 시체’에서 그래프턴 태너는 2010년대 서구 문화의 병폐를 진단합니다. 인간이 ‘지워지고’ 미래가 실패함으로 인해 문화는 ‘시체’와 같아집니다. 문화가 역동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웅얼대는 시체”일 뿐입니다. 태너는 이 “웅얼대는 시체”를 이해하고 그 외부를 상상하기 위해 유령론(hauntology)과 베이퍼웨이브(vaporwave) 장르를 선택합니다. 이 두 가지 이론적·예술적 실천은 문화 산업의 병폐를 재현 내지는 교란함으로써 “웅얼대는 시체”의 대안을 상상케 합니다.
2부 ‘시체가 벌떡!’에서 나원영은 2020년대 대한민국 문화 속에서 유령론을 ‘힘’의 문제로 옮겨오고자 합니다. 2010년대 미국에서 베이퍼웨이브가 그 실패를 씹고 뜯으며 분명한 대안으로 떠올랐던 것과 달리, 2020년대 대한민국의 문화는 여전히 현재의 이익을 위해 과거의 탐닉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원영은 ‘시체’ 상태의 한국 대중문화의 ‘사용법’을 개발할 필요를 주장합니다.
『웅얼대는 시체를』은 방향이 비슷하지만 욕심이 다른 두 이론가의 글을 담고 있습니다. 태너도 나원영도 현실과 문화를 유영하는 듯한 유희적인 글쓰기를 펼치지만, 그 와중에 10년 늦은 유령론의 수입업자로서 2026년의 나원영은 2016년의 그래프턴 태너보다 더 절박하고 기대치가 높습니다. 나원영은 대중문화의 묘지에서 무덤의 표면만 간질이기를 멈추고, 과거에 깃든 진짜 ‘행위성’을 직면하고 더욱 잘 ‘뽑아 먹기’를 한국 문화에 촉구합니다.

『웅얼대는 시체를』은 인간성도 역사도 없는 ‘시체’로서 인터넷 시대의 대중문화 산업을 비평하는 문화이론서입니다.
저서 『대체 현실 유령』을 쓴 ‘인터넷의 심해 잠수부’이자 대중음악 비평가 나원영은 ‘사용 중’의 두 번째 참여자로서 자신이 사용해 볼 상대를 찾습니다. 그가 선택하는 건 저서 『포에버리즘』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문화이론가 그래프턴 태너(Grafton Tanner)의 책 『웅얼대는 시체』입니다. 이에 따라 『웅얼대는 시체를』의 1부에는 그래프턴 태너의 책 전문이 나원영 자신의 번역으로 수록됩니다. 그리고 나원영은 이 1부를—『웅얼대는 시체』를—사용하여 2부 「시체가 벌떡!」을 씁니다.
1부 ‘웅얼대는 시체’에서 그래프턴 태너는 2010년대 서구 문화의 병폐를 진단합니다. 인간이 ‘지워지고’ 미래가 실패함으로 인해 문화는 ‘시체’와 같아집니다. 문화가 역동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웅얼대는 시체”일 뿐입니다. 태너는 이 “웅얼대는 시체”를 이해하고 그 외부를 상상하기 위해 유령론(hauntology)과 베이퍼웨이브(vaporwave) 장르를 선택합니다. 이 두 가지 이론적·예술적 실천은 문화 산업의 병폐를 재현 내지는 교란함으로써 “웅얼대는 시체”의 대안을 상상케 합니다.
2부 ‘시체가 벌떡!’에서 나원영은 2020년대 대한민국 문화 속에서 유령론을 ‘힘’의 문제로 옮겨오고자 합니다. 2010년대 미국에서 베이퍼웨이브가 그 실패를 씹고 뜯으며 분명한 대안으로 떠올랐던 것과 달리, 2020년대 대한민국의 문화는 여전히 현재의 이익을 위해 과거의 탐닉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원영은 ‘시체’ 상태의 한국 대중문화의 ‘사용법’을 개발할 필요를 주장합니다.
『웅얼대는 시체를』은 방향이 비슷하지만 욕심이 다른 두 이론가의 글을 담고 있습니다. 태너도 나원영도 현실과 문화를 유영하는 듯한 유희적인 글쓰기를 펼치지만, 그 와중에 10년 늦은 유령론의 수입업자로서 2026년의 나원영은 2016년의 그래프턴 태너보다 더 절박하고 기대치가 높습니다. 나원영은 대중문화의 묘지에서 무덤의 표면만 간질이기를 멈추고, 과거에 깃든 진짜 ‘행위성’을 직면하고 더욱 잘 ‘뽑아 먹기’를 한국 문화에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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