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도서관과 사서가 등장하는 단편소설 다섯 편을 담은 소설집. 「해빙기」는 고교 동창인 수아와 은설이 20년 만에 도서관 사서와 작가가 되어 다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숲으로」에서는 교도소 도서관 설립을 위해 도서관 사서와 교도소 직원이 만난다. 「흔적들」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수빈이 사서가 되기 위해 일을 그만두면서 자신을 대신할 아르바이트생 유림을 만나는 이야기다. 「가까이」는 도서관 사서에게 어느 날 낯선 여인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서 시작한다. 「시위」는 계약직 사서를 내보내야만 하는 오하영 과장의 분투기를 그렸다. 2020년에 출간한 『우연의 소설』의 개정판이다.
차례
해빙기 8
숲으로 40
흔적들 84
가까이 128
시위 160
책 속에서
첫 문장: “응, 언덕 꼭대기에 있는 낡은 석조 건물.”
P. 38 집에 돌아온 수아는 휴대폰을 꺼 놓으려다 말았다. 은설과 헤어지면서 스치듯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수아의 말에 은설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꼭 어제 헤어진 사람 같다고 수아는 생각했다. 사실은 한 번도 헤어진 적 없는 사람 같다고. -「해빙기」 中
P. 73 목연은 잠에서 깨고도 한동안 자리에 누운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버린 것일까 버림받은 것일까. 왜 지난 시간들은 이 두 개의 갈래로서만 존재하는 걸까. 그건, 그건 당신밖에 모르죠.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겠어요? 보세요, 명령은 자기 자신한테 하는 거예요. -「숲으로」 中
P. 101 수빈은 가만히 내 말을 듣고만 있다가 그대로 수긍하는 듯 보이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게 맞는 걸까?”
“응?”
“그 애가 새로운 환경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게 더 맞는 것 아닌가?”
한숨이 나왔다. 수빈이 이어서 말했다.
“그럴 수 있잖아. 지금까지 아무도 그 앨 신경써주지 않아서 그렇지 누구 한 명이라도 다르게 대해주면, 친구가 생기면, 응?”
나는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흔적들」 中
P. 120 “언젠가는 신나는 내리막이 나올 줄 알았어.”
수빈이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리막인데 신나다니 긍정적이네.”
“지금까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활용만 하면서 살아가는 때가 올 줄 알았어. 근데 뭐 이러냐. 언제까지 준비만 해? 아 진짜 피곤해.”
“피곤하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어. 나를, 나를, 너무 오래 살아야 돼. 맘에도 안 드는데.”
“난 맘에 드는데. 나쁘지 않아, 이 정도면.” -「흔적들」 中
P. 155-156 “틈이요. 아주 가느다란 틈.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았는데,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이 커지는 틈이란 게 있잖아요. 거기로 다시 돌아가서 메우고 싶어도 시간이 지나면 영원히 채울 수 없게 되는 거요. 저는 그걸 지금 하고 싶은 거예요. 선생님한텐 이상하고 어리석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때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고 싶어요.” -「가까이」 中
P. 195-196 모든 것을 다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면 한순간도 잊지 않기를. 언제나 생생하게 느끼기를 바랐던 멍청하고 갑갑했던 때. 그런 탓인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몇 개의 조각들이 있다. 거의 다 지워졌는데, 그렇게도 무언가를 부여잡으려 했던 팽팽하고 악착같던 자신의 모습은 이제 다 사라졌는데…. 오하영은 그 조각들이 마치 저녁 불이 번지고 있는 마을의 창문들 사이 어디쯤 있기라도 한 듯 하염없이 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위」 中
저자 소개 | 강민선
계속 쓰는 사람.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 듯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2017년에 독립출판물 『백쪽』을 시작으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2018), 『월요일 휴무』(2018), 『시간의 주름』(2018), 『여름특집』(2018), 『가을특집』(2018), 『나의 비정규 노동담』(2019), 『비행기 모드』(2019), 『외로운 재능』(2019), 『우연의 소설』(2020), 『자책왕』(2020), 『겨울특집』(2020), 『극장칸』(2021), 『하는 사람의 관점』(2022), 『비생산 소설』(2023), 『지도와 영토』(2024), 『당신을 기억할 무언가』(2025) 등을 쓰고 만들었다. 저자로 참여한 책은 『상호대차』(이후진프레스, 2019), 『도서관의 말들』(유유, 2019), 『아득한 밤에』(유어마인드, 2021), 『끈기의 말들』(유유, 2023)이 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책 소개
도서관과 사서가 등장하는 단편소설 다섯 편을 담은 소설집. 「해빙기」는 고교 동창인 수아와 은설이 20년 만에 도서관 사서와 작가가 되어 다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숲으로」에서는 교도소 도서관 설립을 위해 도서관 사서와 교도소 직원이 만난다. 「흔적들」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수빈이 사서가 되기 위해 일을 그만두면서 자신을 대신할 아르바이트생 유림을 만나는 이야기다. 「가까이」는 도서관 사서에게 어느 날 낯선 여인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서 시작한다. 「시위」는 계약직 사서를 내보내야만 하는 오하영 과장의 분투기를 그렸다. 2020년에 출간한 『우연의 소설』의 개정판이다.
차례
해빙기 8
숲으로 40
흔적들 84
가까이 128
시위 160
책 속에서
첫 문장: “응, 언덕 꼭대기에 있는 낡은 석조 건물.”
P. 38 집에 돌아온 수아는 휴대폰을 꺼 놓으려다 말았다. 은설과 헤어지면서 스치듯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수아의 말에 은설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꼭 어제 헤어진 사람 같다고 수아는 생각했다. 사실은 한 번도 헤어진 적 없는 사람 같다고. -「해빙기」 中
P. 73 목연은 잠에서 깨고도 한동안 자리에 누운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버린 것일까 버림받은 것일까. 왜 지난 시간들은 이 두 개의 갈래로서만 존재하는 걸까. 그건, 그건 당신밖에 모르죠.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겠어요? 보세요, 명령은 자기 자신한테 하는 거예요. -「숲으로」 中
P. 101 수빈은 가만히 내 말을 듣고만 있다가 그대로 수긍하는 듯 보이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게 맞는 걸까?”
“응?”
“그 애가 새로운 환경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게 더 맞는 것 아닌가?”
한숨이 나왔다. 수빈이 이어서 말했다.
“그럴 수 있잖아. 지금까지 아무도 그 앨 신경써주지 않아서 그렇지 누구 한 명이라도 다르게 대해주면, 친구가 생기면, 응?”
나는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흔적들」 中
P. 120 “언젠가는 신나는 내리막이 나올 줄 알았어.”
수빈이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리막인데 신나다니 긍정적이네.”
“지금까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활용만 하면서 살아가는 때가 올 줄 알았어. 근데 뭐 이러냐. 언제까지 준비만 해? 아 진짜 피곤해.”
“피곤하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어. 나를, 나를, 너무 오래 살아야 돼. 맘에도 안 드는데.”
“난 맘에 드는데. 나쁘지 않아, 이 정도면.” -「흔적들」 中
P. 155-156 “틈이요. 아주 가느다란 틈.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았는데,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이 커지는 틈이란 게 있잖아요. 거기로 다시 돌아가서 메우고 싶어도 시간이 지나면 영원히 채울 수 없게 되는 거요. 저는 그걸 지금 하고 싶은 거예요. 선생님한텐 이상하고 어리석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때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고 싶어요.” -「가까이」 中
P. 195-196 모든 것을 다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면 한순간도 잊지 않기를. 언제나 생생하게 느끼기를 바랐던 멍청하고 갑갑했던 때. 그런 탓인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몇 개의 조각들이 있다. 거의 다 지워졌는데, 그렇게도 무언가를 부여잡으려 했던 팽팽하고 악착같던 자신의 모습은 이제 다 사라졌는데…. 오하영은 그 조각들이 마치 저녁 불이 번지고 있는 마을의 창문들 사이 어디쯤 있기라도 한 듯 하염없이 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위」 中
저자 소개 | 강민선
계속 쓰는 사람.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 듯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2017년에 독립출판물 『백쪽』을 시작으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2018), 『월요일 휴무』(2018), 『시간의 주름』(2018), 『여름특집』(2018), 『가을특집』(2018), 『나의 비정규 노동담』(2019), 『비행기 모드』(2019), 『외로운 재능』(2019), 『우연의 소설』(2020), 『자책왕』(2020), 『겨울특집』(2020), 『극장칸』(2021), 『하는 사람의 관점』(2022), 『비생산 소설』(2023), 『지도와 영토』(2024), 『당신을 기억할 무언가』(2025) 등을 쓰고 만들었다. 저자로 참여한 책은 『상호대차』(이후진프레스, 2019), 『도서관의 말들』(유유, 2019), 『아득한 밤에』(유어마인드, 2021), 『끈기의 말들』(유유, 2023)이 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관련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