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진이 영화에 전해준 것은 무엇인가?
사진과 영화의 관계를 다룬 비평적 에세이
사진과 영화의 관계를 다룬 글과 책들은 적지 않지만, 대개는 매체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을 통해 사진에서 영화로 이어지는 기술적 계보를 그리는 데 그치곤 한다. 하지만 물질적·기술적 기반에 대한 고찰만으로는 사진과 영화의 관계를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날로그 시절의 관념으로 영화가 초당 24장의 사진으로 구성된다고 간주하든, 디지털 기술 도래 이후 사진과 영화가 모두 픽셀과 비트의 조합물이라 간주하든, 이는 우리가 사진과 영화를 실제로 지각하는 경험적 차원과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경험하는 사진 매체 특유의 “존재론적 양극성(ontological polarity)” 개념을 정의하고 이러한 특성이 영화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다양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통해 비평적으로 답사해 보려는 에세이다.
목차
서문
1. 얼굴 없는 표면
2. 얼굴들의 연대기
3. 사진적 인물과 영화적 인물
4. 식물성의 유혹
5. 사진 없는 유토피아
6. 영화 없는 유토피아
나가며, 들어가며
책속에서
사진과 영화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믿던 야만적 즐거움의 시대가 있었다. 영화는 초당 24장의 사진을 스크린에 영사하는 매체로 간주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 물질적·기술적 기반에 대한 고찰만으로 사진과 영화의 관계를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그런 고찰에서 나오는 것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시시한 결론들밖에는 없을 터다. 영화가 초당 24장의 사진으로 구성되건, 사진이나 영화가 모두 픽셀과 비트의 조합물이건, 이는 우리가 사진과 영화를 실제로 지각하는 경험적 차원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 7~8쪽.
나는 사진과 영화 각각의 존재론으로부터 출발해 그 둘의 연관을 따져보기보다는 마치 귀신 들리듯 사진 들린 영화들을 찾아다니며 산책하고 싶었다. 에세이란 이러한 산책자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 책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분석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대상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에세이다. - 9쪽.
사진이란 과거의 어느 순간 카메라 앞에 있었던 무언가의 흔적인 동시에 그것의 생김새를 닮은 형상이고, 증거인 동시에 유사-현존이며, 물질인 동시에 이미지라는 것을 종종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반성적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비유하자면, 주형과 모형이 한데 붙은 것이 사진이라고 보는 셈이다. (…) 하지만 사진에서 주형과 모형의 결합은 결코 필연적이지 않다. 그저 텅 빈 주형으로서의 사진, 즉 모형을 떼어 내다 남은 재료 일부가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은 주형으로서의 사진이 있을 수 있는가 하면, 주형을 통해 만든 모형과 매우 흡사해 보이지만 실은 주형 없이 만들어진 모형으로서의 사진도 있을 수 있다. 특히 디지털 이미지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교묘하게 합성된 사진에서부터 전적으로 CG에 힘입어 제작된 사진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는 주형 없는 모형으로서의 사진이 넘쳐나게 되었고 그에 따라 흔적·증거·물질로서의 특성과 형상·유사-현존·이미지로서의 특성을 한데 묶는 ‘동시에’라는 표현은 매우 미심쩍은 것이 되었다. - 18쪽.
그렇다면 사진이 영화에 전해준 것은 무엇인가? 어리석은 질문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영화란 일련의 사진을 연속적으로 투사해 움직임의 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따라서 사진은 영화의 물질적 토대가 된다는 상식은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사진의 발명에서 시네마토그래프의 발명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기술적 이미지 체제가 전반적으로 디지털로 전환 된 지금, 사진은 영화와 함께 픽셀이라는 비물질적 토대를 공유하는 처지가 되었다. 사진이란 카메라 앞에 있던 무언가에 반사된 빛의 흔적을 담은 것이고, 따라서 그것이 무엇이건 무언가가 있었음에 대한 증거이며, 그 ‘있었음’을 한결같이 ‘있음’의 상태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것이야말로 사진이 영화에 물려준 유산이라는 주장도 더 이상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자. 이 주장에는 아직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지만 그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이제 불확실하기 짝이 없다. 어떤 ‘있었음’에도 의존하지 않으면서 가상적 ‘있음’만을 우리에게 방사하는 영화는 이제 아주 흔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 38쪽.
우리는 분명 사실적 존재를 보고 있으면서도 또한 어떤 허구적 존재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꼭 프랭크의 사진이 아니더라도, 사진을 통해 포착된 사람들은 언제나 이처럼 존재론적 양극에 동시에 자리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독특한 존재론적 형상을 ‘사진적 인물’이라 부르기로 하자.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을 철저하게 인위적으로 연출해 얻은 사진의 경우에도 사진적 인물의 형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즉 메이크업과 미장센으로 허구적 존재성을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사실적 존재의 흔적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진은 언제나 세계 자체를 인용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 77쪽
책소개
사진이 영화에 전해준 것은 무엇인가?
사진과 영화의 관계를 다룬 비평적 에세이
사진과 영화의 관계를 다룬 글과 책들은 적지 않지만, 대개는 매체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을 통해 사진에서 영화로 이어지는 기술적 계보를 그리는 데 그치곤 한다. 하지만 물질적·기술적 기반에 대한 고찰만으로는 사진과 영화의 관계를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날로그 시절의 관념으로 영화가 초당 24장의 사진으로 구성된다고 간주하든, 디지털 기술 도래 이후 사진과 영화가 모두 픽셀과 비트의 조합물이라 간주하든, 이는 우리가 사진과 영화를 실제로 지각하는 경험적 차원과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경험하는 사진 매체 특유의 “존재론적 양극성(ontological polarity)” 개념을 정의하고 이러한 특성이 영화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다양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통해 비평적으로 답사해 보려는 에세이다.
목차
서문
1. 얼굴 없는 표면
2. 얼굴들의 연대기
3. 사진적 인물과 영화적 인물
4. 식물성의 유혹
5. 사진 없는 유토피아
6. 영화 없는 유토피아
나가며, 들어가며
책속에서
사진과 영화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믿던 야만적 즐거움의 시대가 있었다. 영화는 초당 24장의 사진을 스크린에 영사하는 매체로 간주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 물질적·기술적 기반에 대한 고찰만으로 사진과 영화의 관계를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그런 고찰에서 나오는 것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시시한 결론들밖에는 없을 터다. 영화가 초당 24장의 사진으로 구성되건, 사진이나 영화가 모두 픽셀과 비트의 조합물이건, 이는 우리가 사진과 영화를 실제로 지각하는 경험적 차원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 7~8쪽.
나는 사진과 영화 각각의 존재론으로부터 출발해 그 둘의 연관을 따져보기보다는 마치 귀신 들리듯 사진 들린 영화들을 찾아다니며 산책하고 싶었다. 에세이란 이러한 산책자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 책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분석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대상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에세이다. - 9쪽.
사진이란 과거의 어느 순간 카메라 앞에 있었던 무언가의 흔적인 동시에 그것의 생김새를 닮은 형상이고, 증거인 동시에 유사-현존이며, 물질인 동시에 이미지라는 것을 종종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반성적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비유하자면, 주형과 모형이 한데 붙은 것이 사진이라고 보는 셈이다. (…) 하지만 사진에서 주형과 모형의 결합은 결코 필연적이지 않다. 그저 텅 빈 주형으로서의 사진, 즉 모형을 떼어 내다 남은 재료 일부가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은 주형으로서의 사진이 있을 수 있는가 하면, 주형을 통해 만든 모형과 매우 흡사해 보이지만 실은 주형 없이 만들어진 모형으로서의 사진도 있을 수 있다. 특히 디지털 이미지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교묘하게 합성된 사진에서부터 전적으로 CG에 힘입어 제작된 사진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는 주형 없는 모형으로서의 사진이 넘쳐나게 되었고 그에 따라 흔적·증거·물질로서의 특성과 형상·유사-현존·이미지로서의 특성을 한데 묶는 ‘동시에’라는 표현은 매우 미심쩍은 것이 되었다. - 18쪽.
그렇다면 사진이 영화에 전해준 것은 무엇인가? 어리석은 질문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영화란 일련의 사진을 연속적으로 투사해 움직임의 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따라서 사진은 영화의 물질적 토대가 된다는 상식은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사진의 발명에서 시네마토그래프의 발명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기술적 이미지 체제가 전반적으로 디지털로 전환 된 지금, 사진은 영화와 함께 픽셀이라는 비물질적 토대를 공유하는 처지가 되었다. 사진이란 카메라 앞에 있던 무언가에 반사된 빛의 흔적을 담은 것이고, 따라서 그것이 무엇이건 무언가가 있었음에 대한 증거이며, 그 ‘있었음’을 한결같이 ‘있음’의 상태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것이야말로 사진이 영화에 물려준 유산이라는 주장도 더 이상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자. 이 주장에는 아직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지만 그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이제 불확실하기 짝이 없다. 어떤 ‘있었음’에도 의존하지 않으면서 가상적 ‘있음’만을 우리에게 방사하는 영화는 이제 아주 흔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 38쪽.
우리는 분명 사실적 존재를 보고 있으면서도 또한 어떤 허구적 존재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꼭 프랭크의 사진이 아니더라도, 사진을 통해 포착된 사람들은 언제나 이처럼 존재론적 양극에 동시에 자리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독특한 존재론적 형상을 ‘사진적 인물’이라 부르기로 하자.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을 철저하게 인위적으로 연출해 얻은 사진의 경우에도 사진적 인물의 형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즉 메이크업과 미장센으로 허구적 존재성을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사실적 존재의 흔적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진은 언제나 세계 자체를 인용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 77쪽
관련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