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이 만화책이 발견되기 이전부터 시작된 누군가이길 바란다.
끝.
‘섬광이 지나갔습니다’
표지부터 시작된 쪽수 ‘1’은 만화책의 마지막 문장이 무엇일지 엄밀하게 따져볼 준비를 한다. 그리하여 『항로』의 가장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접착제 없이 조립과 분해가 가능하나 잦은 마찰로 인해 실이 삭아 재조립이 어렵거나 형태가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표면적으로 책의 특수한 형태나 구조에 대해 경고하는 듯 하다. 그런데 책의 형태는 무엇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중철제본 변형 형식인 내지의 중심에서 과도하게 노출된 매듭의 악력이 되묻는다. 판형의 크기는 이 독특한 제본 방식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오직 크기에서 오는 내지의 무게가 책의 좁은 중심부를 확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접착제를 제거한 만화책은 운명적으로 뒤척이는 동시에 진동에 의한 잦은 마찰로 타들어갈 이야기의 모순을 암시한다. 연속성으로 감각되는 것들이 인물로 다듬어져 이야기가 되어왔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어떠한 이유로 힘겹게 개인적으로 감각되거나 감각되지 않아왔는가. 『항로』는 만화 또는 이야기의 연속성을 견인하는 잠정적 동력으로 비인간 또는 존재라 일컬어지지 않는 대기와 같은 거대한 움직임의 틀과 그것들을 향한 두려움의 감정을 동시에 향하는 모순된 만화책이다.
책 속으로
충돌과 마찰, 섬광, 건조함과 습함, 기억, 끊어질듯 이어지는 (비)존재의 숨, 비인간 그리고 두려움 이것들과 만화는 어떠한 방식으로 어우러지는가.
전차에 탑승하지 않고 터널 위를 거니는 이들이 있다.
터널과 터널 사이 검은 어둠에서 얕은 어둠으로 모습을 드러낸 100m 가량의 철길. 노출된 빈 구간은 단서로 작용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터널이 없기에, 밤의 언덕은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은 것들은 또한 함께 있다. 어느 밤, 두 인물이 철길 옆으로 난 언덕을 오른다. 언덕을 오르며 점진적으로 터널 사이 빈 공간, 터널의 입구를 비롯한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침범하는 또다른 시선의 틀이 있다.
책 밖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할 마법은 없다. 그러나 ‘본다’는 행위의 골격은 환경, 태도, 연속되는 섬광을 타고 숨쉬는 또다른 누군가일 수 있다. ‘갉아먹는 항로’라는 표현은 과격하지만 끊임없는 마찰에 대한 시도로 읽히지 않은 존재를 섬광으로 포착함을 설명하기에 전혀 과격하지 않다. ‘항로’란 단어는 정해진 목적지가 있는 경로와 조금 다르게 읽힐 수 있다. 거대한 선박, 항공기를 연상시키고 현란한 물길과 잡을 수 없는 구름 사이의 변화들을 상징한다. 이 만화책은 목차 지도를 보며 상하좌우 운동을 하는 시선들을 위한 책이며 변화들을 위해 행진곡을 연주한다.
저자 소개
taeppokp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다양한 예술과 삶의 형태가 다시 삶의 추동력이 되길 바라며 작업하고 있다. 줄임말을 다시 펼쳐 ‘태풍과 폭풍’이라는 1인출판사를 만들었고, 그 전에 만화책 『황금 테두리는 얇을수록 빛난다』를 만들었다.
도움: 이로, 김종소리, 보스토크 프레스, wrm
겉지: GA크라프트보드 310g, 350g(고지율 100퍼센트)
목차: 크러쉬 120g(고지율 40퍼센트+유기농 식품 부산물 15퍼센트)
내지: 그린라이트 100g(고지율 30퍼센트 이상)
실: 대마, 황마
* 실은 일부 소이왁스 코팅하여 가루가 떨어지거나 온도에 따라 끈적거릴 수 있으나 몸에 무해합니다. 다만, 실과 종이에 베이지 않게 주의하세요.
* 이 책은 접착제 없이 조립과 분해가 가능하나 잦은 마찰로 인해 실이 삭아 재조립이 어렵거나 형태가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항로』는 2022년 wrm과 보스토크프레스에서 주관한 <2022 docking!> 더미북 워크숍 프로그램의 그림 분야에 선정되어 처음 만들었습니다. 또한 2023년 [제 17회 쿨투라 신인상] 공모에서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후 개인적으로 여러 수정과 검토를 거쳐 최종 『항로』를 독립출판 했습니다.
시작.
이 만화책이 발견되기 이전부터 시작된 누군가이길 바란다.
끝.
‘섬광이 지나갔습니다’
표지부터 시작된 쪽수 ‘1’은 만화책의 마지막 문장이 무엇일지 엄밀하게 따져볼 준비를 한다. 그리하여 『항로』의 가장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접착제 없이 조립과 분해가 가능하나 잦은 마찰로 인해 실이 삭아 재조립이 어렵거나 형태가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표면적으로 책의 특수한 형태나 구조에 대해 경고하는 듯 하다. 그런데 책의 형태는 무엇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중철제본 변형 형식인 내지의 중심에서 과도하게 노출된 매듭의 악력이 되묻는다. 판형의 크기는 이 독특한 제본 방식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오직 크기에서 오는 내지의 무게가 책의 좁은 중심부를 확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접착제를 제거한 만화책은 운명적으로 뒤척이는 동시에 진동에 의한 잦은 마찰로 타들어갈 이야기의 모순을 암시한다. 연속성으로 감각되는 것들이 인물로 다듬어져 이야기가 되어왔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어떠한 이유로 힘겹게 개인적으로 감각되거나 감각되지 않아왔는가. 『항로』는 만화 또는 이야기의 연속성을 견인하는 잠정적 동력으로 비인간 또는 존재라 일컬어지지 않는 대기와 같은 거대한 움직임의 틀과 그것들을 향한 두려움의 감정을 동시에 향하는 모순된 만화책이다.
책 속으로
충돌과 마찰, 섬광, 건조함과 습함, 기억, 끊어질듯 이어지는 (비)존재의 숨, 비인간 그리고 두려움 이것들과 만화는 어떠한 방식으로 어우러지는가.
전차에 탑승하지 않고 터널 위를 거니는 이들이 있다.
터널과 터널 사이 검은 어둠에서 얕은 어둠으로 모습을 드러낸 100m 가량의 철길. 노출된 빈 구간은 단서로 작용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터널이 없기에, 밤의 언덕은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은 것들은 또한 함께 있다. 어느 밤, 두 인물이 철길 옆으로 난 언덕을 오른다. 언덕을 오르며 점진적으로 터널 사이 빈 공간, 터널의 입구를 비롯한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침범하는 또다른 시선의 틀이 있다.
책 밖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할 마법은 없다. 그러나 ‘본다’는 행위의 골격은 환경, 태도, 연속되는 섬광을 타고 숨쉬는 또다른 누군가일 수 있다. ‘갉아먹는 항로’라는 표현은 과격하지만 끊임없는 마찰에 대한 시도로 읽히지 않은 존재를 섬광으로 포착함을 설명하기에 전혀 과격하지 않다. ‘항로’란 단어는 정해진 목적지가 있는 경로와 조금 다르게 읽힐 수 있다. 거대한 선박, 항공기를 연상시키고 현란한 물길과 잡을 수 없는 구름 사이의 변화들을 상징한다. 이 만화책은 목차 지도를 보며 상하좌우 운동을 하는 시선들을 위한 책이며 변화들을 위해 행진곡을 연주한다.
저자 소개
taeppokp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다양한 예술과 삶의 형태가 다시 삶의 추동력이 되길 바라며 작업하고 있다. 줄임말을 다시 펼쳐 ‘태풍과 폭풍’이라는 1인출판사를 만들었고, 그 전에 만화책 『황금 테두리는 얇을수록 빛난다』를 만들었다.
도움: 이로, 김종소리, 보스토크 프레스, wrm
겉지: GA크라프트보드 310g, 350g(고지율 100퍼센트)
목차: 크러쉬 120g(고지율 40퍼센트+유기농 식품 부산물 15퍼센트)
내지: 그린라이트 100g(고지율 30퍼센트 이상)
실: 대마, 황마
* 실은 일부 소이왁스 코팅하여 가루가 떨어지거나 온도에 따라 끈적거릴 수 있으나 몸에 무해합니다. 다만, 실과 종이에 베이지 않게 주의하세요.
* 이 책은 접착제 없이 조립과 분해가 가능하나 잦은 마찰로 인해 실이 삭아 재조립이 어렵거나 형태가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항로』는 2022년 wrm과 보스토크프레스에서 주관한 <2022 docking!> 더미북 워크숍 프로그램의 그림 분야에 선정되어 처음 만들었습니다. 또한 2023년 [제 17회 쿨투라 신인상] 공모에서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후 개인적으로 여러 수정과 검토를 거쳐 최종 『항로』를 독립출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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