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입고] 여름의 끝, 사물들

 
 

 13,000

140mm X 210mm
192 pages
소설 신유진, 사진 신승엽
1984Books

재고있음

상품 설명

글이 사진을 설명하거나 사진이 글을 보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세계에서,
그러나 창을 열어두고
여기서 부는 바람에 시원해지고
저기서 새어 나온 불빛에 따뜻해지는 사진과 글,
한 권의 책속에 담을 수 있을까.

2014년 여름, 처음으로 품었던 생각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형태를 입기 위해서는 좀 더 깊고 단단해져야 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작가의 말

<여름의 끝>
제이와 버드와 그리고 나 –  소설가 신유진

폭염이었다. 20년도 넘은 엄마의 부엌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매일 반들반들하게 닦아도 세월이 만들어 놓은 흔적은 어쩔 수 없다.
군데군데 때가 남았다. 나는 그것이 애틋하면서도 또 부끄러웠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는 엄마의 얼굴은 늘 지쳐 보였다.
누군가, 나에게 너무 지쳐 보인다고 말할 때면 엄마를 떠올렸다.
아마도, 나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새 어릴 때 엄마를 바라보던 불안하고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렇게 성장 아닌 성장을 해 버렸다.
엄마의 부엌에서 쓰기 시작한 글이다.
제이와 버드는, 그 해, 내가 자랐던 여름을 함께 보낸 그들의 이야기이자 어쩔 수 없는 나의 이야기이도 하다.
술 한 잔을 앞에 놓고 수없이 떠들어 대던 말속에 제이와 버드만의 세상이 고스란히 있었다.
한때, 우리는 두렵고 불안했으며, 지루하고, 분노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능하지는 않았으나 무력한 청춘이었다.

8월의 마지막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엄마는 또 그 부엌에 앉아 있었다.
어디서 시원한 바람이 불자, 엄마가 활짝 웃었다.
‘이제 됐다. 징글징글한 여름이 다갔다.’ 그렇게 말했었나.
많은 것을 보내고, 많은 것을 지나온, 그러나 결코 공허함에 자리를 내주지 않은 진짜 어른의 얼굴을 하고.
엄마는 서른 살을 훌쩍 넘은 딸을 향해 편안하게 웃었다.
나는 여전히 끈적이는 공기가 못마땅하여, 전기세가 무서워서 틀지 못하는 오래된 에어컨을 타박했다.
엄마에게 새 에어컨을 사주고 싶었으나 ‘여름이 다 갔다’라는 엄마의 말에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무력하진 않으나 무능한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여름이 한참 남았는데,
여름이 다 가버린 것 마냥, 뚝뚝 떨어지는 땀을 몰래 쓱 훔쳤다.
서른이 넘은 제이와 버드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여름이 가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할 텐데,
여름이 다 가버린 것 마냥, 성장을 끝낸 것 마냥,
덜 자란 얼굴을 숨기고,
어른인척,
무능한 어른인척.
그러나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열심히.
차도의 왼쪽 오른쪽을 살피며, 조심조심 앞으로 나갈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아직 무능하나,
그러나 무력하지 않으므로, 살아 있는 한.

<사물들>
나의 문장들 – 사진가 신승엽

단 한 줄의 문장같은,
그것의 무게와 냄새와 질감과 울림을.

사진이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문학적 영역으로 들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인의 문장이 아니라, 시인의 눈을 얻는 것이므로.

누군가 이미 걸었던 길이라 할지라도
유행이란 이름 아래 함부로 건너 뛰지 않고,
아주 먼 길일지라도,
아무 말 없이,
오롯이 나의 두 발로 걸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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